공작조 10팀이 남한 누볐다…품성까지 적힌 ‘포섭 리스트’ [간첩전쟁 7화]

  • 카드 발행 일시2024.06.12

〈제1부〉 ‘공화국 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인생유전

7화. 남파간첩의 화양연화

1980년대 남한에서 청년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주요 운동권 인물들을 포섭해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  

1995년 8월 초, 노동당 대남 공작부서인 사회문화부 6과(대남공작과) 소속이던 김동식에게 2차 남한 침투를 준비하라는 명령이 전격적으로 떨어졌다.

포섭 리스트에는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등 쟁쟁한 운동권 10명의 이름이 올랐다. L, W, K, H 등 남한에서 반정부 시위와 집회를 주도하던 대학 운동권 핵심들이었다. 남한 신문과 방송을 접하고 있던 터라 몇몇은 익숙했고, 몇몇은 생소했다.

그들의 인적사항이 담긴 대외비 파일을 넘겨받았다. 사회문화부에서 축적하고 분석한 운동권 인사들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신문과 잡지 기사 스크랩, 기고문, 연설문, TV방송 녹음테이프, 주요 경력이 빼곡히 담겼다.

A급, B급, C급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 이념 성향이 가장 중시됐다.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가 우선 포섭 대상이었다. 총학생회 등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직 지도 능력도 따졌다. 시위와 집회 투쟁을 주도한 경험자를 선호했다. 도덕성과 품성 같은 인물 세평(世評)도 포함됐다.

운동권 인사들을 무더기로 포섭하려는 대담하지만 무모한 공작은 실현 가능할까? 독일 통일-동유럽 공산주의 몰락-소련 해체-냉전 붕괴로 이어지는 급변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주체사상이 남한 운동권에 먹혀들까. 

이런 의구심이 김동식의 생각을 관통했다. 당시의 화려한 대남 공작 실적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지난달 31일 충남 부여 정각사를 찾은 김동식씨. 김씨는 정각사 인근에서 1995년 2차 침투 때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31일 충남 부여 정각사를 찾은 김동식씨. 김씨는 정각사 인근에서 1995년 2차 침투 때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파간첩 전성시대 

남파간첩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들, 즉 간첩들은 1980년대 말~90년대 초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즉 화양연화에 빗대도 손색이 없었다.

이 시기에 사회문화부에서는 김동식 공작조를 포함해 ‘공화국 영웅’을 15명이나 배출했다. 이 중 2명은 2회 연속 받아 ‘공화국 2중영웅’이 됐다. 하늘에서 별을 따기보다 힘들다는 공화국 영웅 칭호였다. 이런 영예를 남파 간첩들이 대거 따냈다는 사실은 그들이 남한에 침투해 누군가를 포섭하거나 지하당을 조직하는 등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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