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18일 휴진" 총파업에…정부 "18일 진료하라" 명령 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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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협)가 오는 18일 전면 휴진을 예고한 데 대해 정부가 전국 3만5000여곳 동네 병·의원을 대상으로 진료 명령·사전 휴진신고명령을 내렸다. 의협에 대해선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확정돼 수습국면이 기대됐지만, 의료계와 정부간 갈등은 다시 강대강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의료법에 근거해 개원의에 대한 진료명령과 휴진 신고명령을 내린다”며 “의료계의 집단휴진에 대해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요한 최소 조치”라고 밝혔다. 의료법 제59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는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전병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연합뉴스

전병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연합뉴스

정부는 유화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의료계가 파업카드를 꺼내면서 진료명령과 휴진 신고명령을 발동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앞서 4일 정부는 복귀 전공의에 행정처분을 중단하고 사직을 허용하기로 했다. '전공의에 퇴로를 열어주자'는 의료계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이 오는 17일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한 데 이어 의협도 18일 하루 휴진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지자체를 통해 3만5000여곳 개원의를 대상으로 진료 명령 및 사전휴진신고명령을 내렸다. 18일 휴진하려는 의료기관은 영업일 기준 사흘 전인 13일까지 이를 신고해야 한다. 이날 한 지자체가 관할 의료기관에 발령한 진료 명령 및 사전 휴진신고명령서에는 “6월 18일 관내 소재 의료기관이 집단 휴진 등의 사유로 일시에 진료하지 않는 경우, 지역 주민의 생명과 건강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라며 “의료법 제59조 제1항에 의거해 귀 의료기관은 6월 18일 당일 환자를 진료할 것을 명령한다”라고 적혀 있다. 또 “상기 명령에도 불구하고 휴진하고자 하는 의료기관은 휴진일 3일 전인 13일까지 관할 보건소에 휴진 신고를 해라. 정당한 사유 없이 명령을 위반해 집단 휴진에 참여하거나 휴업 신고를 하지 않고 휴업하는 경우 의료법 제64조에 따른 불이익(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쓰여 있다.

휴진 신고는 관내 휴진율을 사전에 확인하는 차원이다. 지자체는 이후 휴진 전날인 17일 등기 우편으로, 당일인 18일 오전 9시에는 문자로 두 차례 걸쳐 업무개시명령을 내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송달에 문제가 없도록 중복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일 오전 휴진 여부를 유선으로 확인하고, 전화를 안 받는 등 휴진 의심 기관이 시군구별로 30%를 넘으면 오후에 해당 기관으로 채증을 나가 의료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행정 처분 등 조처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대전광역시가 10일 관할 의료기관에 내린 진료명령 및 사전 휴진신고명령. 사진 독자 제공

대전광역시가 10일 관할 의료기관에 내린 진료명령 및 사전 휴진신고명령. 사진 독자 제공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 자격 정지뿐 아니라 3년 이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범죄 종류와 무관하게 금고형 이상을 받게 되면 면허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 정부는 처분 과정에서 개인 사정 등을 소명 받은 뒤 불법 휴진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앞서 2020년에도 의협은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에 반대해 휴진을 진행했다. 휴진율은 1차(8월 14일) 때 32.6%에 달했지만, 2차(8월 26~28일)에는 10.8%, 8.9%, 6.5% 등으로 줄었다. 당시에도 사전에 이 같은 명령을 내렸고 휴진 당일 채증 작업도 거쳤지만 실제 처분된 사례는 없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시에는 갈수록 휴진율이 10%가 안 되는 등 파급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라며 “의·정 합의가 이뤄지는 분위기였고, 코로나19로 의료계 도움이 절실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면 휴진을 결정한 의협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제51조(사업자 단체 금지행위) 위반 여부도 검토한다. 의협이 불법 집단행동을 유도했다는 강제성이 인정되면 해당 단체에는 10억원 이내 과징금을, 단체장 등 개인은 3년 이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때 김재정 당시 의협 회장은 의료법 위반이 인정돼 징역형을 받고 면허가 취소됐다. 2014년 원격의료  반대 파업 때는 노환규 전 회장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전병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비상진료체계가 110일 이상 장기화되어 국민과 환자의 고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한의사협회가 집단 진료 거부를 선언한 것에 깊은 유감과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야 하는 것은 정부의 헌법적 책무로서 집단 진료 거부에 단호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라며 “집단 진료 거부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설득하고 소통하는 한편,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라고 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투쟁선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투쟁선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환자에게 불안과 피해를 주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의료계 행보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며 의료계에 휴진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도 “의사 집단의 끊이지 않는 불법 행동에 대해 공정위 고발 및 환자 피해 제보센터 개설 등을 검토할 것”이라며 “불법 행동 가담자에게 선처 없이 엄정 대응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대한의학회는 "집단 휴진을 막기 위해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모여서 (의사 인력을) 추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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