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휴진 결의해놓고…요구사항은 "논의중"이라는 서울의대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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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총파업 투쟁 선포를 하고 있다. 뉴스1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총파업 투쟁 선포를 하고 있다. 뉴스1

서울대병원에 이어 의사협회가 집단휴진을 선언했다. 의협은 휴진의 파급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의 17일 휴진 다음날인 18일로 잡았다고 한다. 집단휴진은 2000, 2014, 2020년에 이어 네번째이다. 휴진 결의로만 따지면 7번째이다. 이번 집단휴진은 시점·내용 면에서 명확하지 않은 면이 있다. 우선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덕수 총리는 9일 브리핑에서 "지난주 대학 모집요강 발표와 함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절차가 마무리되었다"고 말했다. 임현택 의협회장은 이날 투쟁선포문에서 "지금이라도 지난 4개월간의 폭압적인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주장했지만 의대 증원 중단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 비대위)의 전면휴진 이유도 흐릿하다. 비대위는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철회가 아니라 취소를 요구한다. 철회와 취소에 차이가 있긴 하다. 진료 현장 복귀자는 행정처분을 취소와 다름없게 되지만 미복귀자는 모호하다. 미복귀자 처리 방향은 정부 내에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미복귀자는 사직 후 개업·취직·입대 등을 선택해야 한다. 다만 정부가 이들에게 면허정지 처분을 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보인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는 6일 보도자료에서 "사태 정상화를 위한 합리적인 조치가 시행되지 않으면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9일 "그 조치에 의협의 요구인 '의대 증원 백지화'도 포함되느냐"는 중앙일보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이 정도 상황이 서울의대 비대위가 휴진할 사인인지 납득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교수회가 나섰다. 교수회는 9일 '진료와 교육 현장을 지키며 의료 시스템과 교육 개혁에 매진합시다'라는 제목의 집단휴진 반대 입장문을 냈다. 교수회는 "의료시스템과 교육·입시 체계를 제대로 개혁하기 위해 진료와 교육 현장을 지켜야 하고, 환자가 피해볼 수 있는 집단 휴진은 재고해 주길 부탁한다"고 요청했다.

 임정묵(농생명공학부) 서울대 교수회장은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의료와 교육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논의할 시간이다. 파업이라는 게 생기면 지금 이야기했던 (의료나 교육 개혁) 모든 걸 할 수 가 없게 된다"며 "파업을 가능하면 자제하고 정부도 전공의 돌아오게 해야 하니 이런 문제를 포함해서 각자의 역할을 제 자리에서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처음 필수의료나 지역의료 대책으로 정부가 들고 나온 게 의대 증원인데, 여기에 모든 문제가 매몰됐다"며 "이제 내년 의대 증원이 정해졌으니 부작용에 대처를 해야 한다. 이런 시점에 갑자기 파업문제가 대두되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과거 의협의 집단휴진 참여율이 10% 안팎으로 저조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파업 결의에 개업의·전공의·봉직의(월급쟁이 의사)·대학교수 등이 두루 참여해 양상이 다를 수도 있다. 40개 의대 중 20곳 의대의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참여하는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가 지난 7일 "의협의 집단행동 방침을 따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불법"이라고 규정한다. 과거 같으면 "엄정 대응"이라고 강하게 나왔을테지만 아직은 낮은 톤을 유지하고 있다.
 의협이 파업을 강행한다면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고, 공정거래법·의료법 처벌이 대두될 전망이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실장은 "집단행동 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며 "개원의들의 불법적 집단행동이 있으면 정부는 의료법 등에 따라 여러 필요한 조치를 해서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휴진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툭 하면 파업을 들고 나오는데, 실제 파업의 영향력이 있던 적이 있나"라며 "의대 증원이 결정된 마당이라서 파업이 성립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얻으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개업의사가 파업을 해도 환자에게 크게 영향이 없으니 무대응으로 나가서 파업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빨리 상황을 수습하고 의료 정책의 시스템을 바꾸는 쪽으로 속도를 내야 할 때 의료계의 집단휴진 얘기가 나와 당황스럽다"며 "개원의이든, 대학병원이든 집단휴진은 불법이고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남 국장은 "개원의들의 휴진은 장기화하기 어렵고 영향도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서울대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이 집단휴진을 하면 환자들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것인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환자단체들은 "극단적 이기주의"라며 의협 간부와 불법 파업 의사들에 대한 행정조치와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양측이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어떻든간에 정부는 1509명 증원의 목표를 달성했다"면서 "그러면 사회를 조용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전공의에게 복귀하면 봐주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할 것처럼 비치는 것은 '정치의 빈곤'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권 교수는 "정부가 그간 의료제도를 망가뜨린 점을 반성하면서 한발 물어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 교수는 "의료계도 아무런 정책 준비 없이 반대만 해온 점을 반성해야 한다. 파업 계획을 접고 근거 자료를 만들어서 대안있는 세력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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