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땐 인플레 감축법 폐기, 방위비 분담금 압박…우크라 종전 협상 급물살 가능성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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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3호 08면

[미국 대선 판세 중간점검] 전문가 기고 - 미 대선 대외 정책 이슈

통상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대외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국제 문제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 이슈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이슈가 누구나 이해 가능한 매우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공화당과 민주당 두 대선 후보 간에 분명한 입장 차이를 보여야 한다. 한국 전쟁과 매카시즘 와중에 치러졌던 1952년 대선, 미국의 위상 추락이 큰 문제였던 1980년 대선, 9.11 테러 이후 강경한 안보 논리가 득세했던 2004년 대선 정도가 예외에 속한다.

올해 대통령 선거는 어떨까. 사실 높은 물가, 국경 혼란, 낙태 권한, 제3당 후보의 파장 등 예년과 마찬가지로 미국 국내 문제들이 유권자들의 주된 관심사다.

국제 이슈가 미국 선거에서 쟁점으로 등장하게 되는 경우는 소위 미국정치화(Americanization) 과정을 꼽을 수 있다. 대외 관계가 국제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의 이념, 경제, 제도, 문화 등에 연결되어 미국 국민들 사이에 이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1차 대전 이후의 윌슨 대통령이 추진했던 다자주의 리더십은 미국정치화 결여로 인해 실패한 사례였다. 반대로 2차 대전 이후의 루스벨트와 트루먼이 도입한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는 반공주의 이념이라는 특수한 미국정치화를 통해 성공한 대표적 경우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하여 찬성과 반대로 양분된 공화당 유권자들이나 이스라엘 지원과 관련하여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민주당의 소수 인종 및 청년층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외교 정책의 미국정치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양극화 상황에 상대당 후보를 찍는 일은 없다. 자기당 후보에 실망하여 투표를 기권하는 선택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는 박빙의 승부를 한 쪽으로 기울게 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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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의 관심사는 만일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 급격하게 달라질 미국 외교 정책 입장들이다. 상대적으로 공약을 잘 지켰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전례를 떠올려 볼 때 우선 트럼프가 유세 기간 중 쏟아내는 자신의 관심사들을 눈여겨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까지 트럼프가 지지 집회나 인터뷰 등을 통해 강조한 사안들로는 수입품에 대한 일괄 관세 부과와 60% 규모의 대중국 관세 정책,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압박,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추진, 연방 관료제의 자기 중심적 재편, 강경한 이민 정책,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비롯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폐기 등이 있다. 선거에 승리한다면 취임 첫 해의 주된 의제는 중국과의 통상, 이민 정책 변화, 연방 정부 개혁 등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 행정 명령에 의존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이는 입법을 통한 미국 정치의 개혁 방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4년이라는 주어진 시간 동안 지지층 중심의 정치에만 몰두할 트럼프 셈법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위한 협상도 푸틴과의 친밀도를 고려해 보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충분하다.

사실 트럼프라는 정치인 특유의 예측불가능성은 단기적 전망을 불가능 혹은 불필요하게 만든다. 오히려 미국 정치와 외교의 역사적 맥락 가운데 트럼프를 위치시키고 긴 호흡과 큰 변화에 대해 분석해 보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 극심한 양극화 시대에 지지층 위주의 반쪽 짜리 정치와 외교를 일삼는 트럼프 정책들이 미국 변화를 온전히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로 적극 투표층이 주도하는 후보 경선 시기에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는 트럼프로 인한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간단히 말해 트럼프는 미국 공화당을 변모시켰다기 보다는 복원하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전후 세계 질서 구축 과정에서 공화당 안에는 비개입주의, 일방주의, 보수적 국제주의라는 세 갈래 그룹의 대응이 생겨났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끈 냉전 승리가 확인되면서 비로소 동맹 중심과 자유무역을 상징되는 보수적 국제주의가 공화당의 통합된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 시기의 이라크 전쟁 실패와 금융 위기는 잠복해 있던 공화당 내 비개입주의와 일방주의를 끄집어 냈다. 오바마 시대에 공화당으로 이탈한 백인 노동자 계층까지 끌어들인 것이 결국 2016년 트럼프의 등장과 당선이었다.

즉, 완전히 고립주의도 아니고 완전히 개입주의도 아닌 하이브리드 외교 정책 정당이 현재의 공화당이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의 최근 의회 표결은 복잡한 당내 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2월의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에 대해 공화당 상원 의원들 중 22명이 찬성, 27명이 반대하였다. 4월의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에 대해서는 하원 공화당 의원들 101명이 지지하였고 112명이 거부하였다. 바이든 대통령 시기에 완전히 양분된 입장을 보이는 공화당 내부 사정이 만일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경우 어떤 단합된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다. 트럼프 측근이나 1기 행정부 각료들, 그리고 공화당 의원들이 최근 들어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한반도 내 북한 핵위협에 대해 의견을 쏟아내고 있는 것 역시 미국 내 공화당과 보수 진영 내의 다양한 시각들 중 일부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주한미군 축소 가능성 등 우리로서는 중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에 관한 주장들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사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선 트럼프가 당선되어야 하고, 이후에 트럼프가 대외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더 나아가 한반도에 대한 트럼프의 숙고와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 결국 예측불허 상황이 겹치고 겹쳐있는 현재 미국의 외교 정책 변화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미국 우선주의라는 큰 흐름은 새로운 변화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가능한 실천들을 찾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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