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교수가 먼저 알아봤다…고대가 간직한 ‘리어카 국보’

  • 카드 발행 일시2024.06.05

‘더 헤리티지’는 앞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립 명문 고려대(“인생은 파멸, 오후 6시 거사” 그는 왜 고려대박물관 노크했나)연세대(고종의 칼, 민비의 금팔찌…‘푸른 눈’ 금고서 꺼낸 비밀)의 사연 많은 유물을 차례로 소개했다. 두 학교는 한 세기가 훌쩍 넘는 역사 속에 수많은 유물과 함께 흥미로운 뒷얘기들을 지니고 있다. 이번 회차는 두 박물관의 특색을 비교하는 번외편 ‘박물관 연고전(고연전)’이다. 연세대박물관 윤현진 학예연구사와 고려대박물관 안소정 학예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박물관의 성장 과정과 이색 유물을 알아본다. 기사의 뒷부분에선 우리나라 청년 정신을 대표해온 두 학교가 숙명처럼 공유하는 동시대 유물도 만난다.

📃기사 미리보기

◦ 리어카에 실은 '국보' 고려대 김성수가 샀다
◦ 사도세자 생모 묘지석이 연세대에 있는 까닭
◦ 순국지사 민영환의 핏자국서 자랐다는 '혈죽'
◦ 4·19 혁명 이끈 ‘피의 증언’ 나란히 문화유산에
📌[기사 속 기사] 6·25 참전 미군의 전리품…61년 만에 돌아온 교기
📌[기사 속 기사] 오세훈 서울시장 재산목록에 송영수 조각이 왜?

국내 ‘최초’는 연세…주막집 기부받은 고대 폭풍성장

지금도 다방면에서 라이벌 의식이 거센 두 대학이지만 박물관 역사를 놓고도 엎치락뒤치락 최고를 겨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혁상 오래된 건 연세대, 일찌감치 박물관 규모를 키운 쪽은 고려대다.

고려대박물관의 출발은 1934년 남창 손진태(1900~?) 선생이 도서관 한쪽에 민속품을 전시한 것을 꼽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민속·민족학의 기틀을 다진 손진태는 6·25 전쟁 중에 납북되기까지 소위 ‘SKY 대학’을 모두 거쳤다.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 강사를 시작으로 보성전문학교(고려대의 전신) 강사와 도서관장을 맡았고 해방 후 서울대 사학과 교수에 임용됐다. 그가 보성전문 재직 시절 전국에서 수집한 민속자료가 고려대박물관의 기초가 됐다. 이에 앞서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촌 김성수(1891~1955)가 인수하고 근대적 본관 건물을 지을 때부터 박물관 역사가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고려대박물관의 초창기인 1955년 전시실 모습. 사진 고려대박물관

고려대박물관의 초창기인 1955년 전시실 모습. 사진 고려대박물관

고려대박물관 역사민속전시실. 사진 고려대박물관

고려대박물관 역사민속전시실. 사진 고려대박물관

어찌 됐든 본격 확장한 계기는 전북 고창에서 주막을 운영했던 안함평(1879~1973) 여사의 기부다. 일찍이 홀로 돼 사고무친(四顧無親)이던 그는 보성전문학교가 개교 3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기부금 모금 운동을 벌이자 1936년 전 재산인 논 1만6000평과 밭 9600여 평을 대가 없이 기증했다. 고려대 측은 이 재산을 토대로 박물관 민속품을 추가로 수집했고 특히 여성생활사 관련 민속품도 강화했다고 한다. 6·25 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인 유물 수집과 기증에 힘입어 1962년 대학박물관으로선 처음으로 단독 건물을 지어 이전하게 된다.

연세대는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