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 감상’ 숲속 트레킹…이 앱 켜면 연주자 다 안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6.04

“동이 트기 전, 요즘 같은 때엔 새벽 4시 반쯤에 숲에 갑니다. 이때가 모든 새가 지저귀는 ‘돈 코러스(dawn chorus, 새벽 새들의 합창)’ 시간이거든요. 새소리를 오랫동안 들어온 사람은 코러스 중에도 소리를 구분할 수가 있어요. 입체적으로 들린다고 하죠. 바로 앞에서 동박새가 지저귀고, 등 뒤에서 멧비둘기가 울고, 저 멀리 뻐꾸기가 울고. 우리가 눈으로 보는 뛰어난 경관을 ‘랜드스케이프(landscape)’라고 하는데, 새벽에 숲에 들면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세상을 경험할 수 있죠. 소리로 이뤄진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거죠. 눈에 들어오는 것보다 자연을 더 깊게 느낀다고 할까요. 새벽에 혼자 숲에 있는 그 자체도 좋지만, 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 것이 더 깊이 있게 느껴져요. 자연이든 세상이든.”

양경모(66) 에코홀씨샵 대표는 생태교육 전문가다. 한반도에 여름 철새가 날아드는 3월부터 6월까지 새 소리를 쫓고, 7월부터 9월까진 풀벌레 소리를 찾아다닌다. 일반인보단 숲 해설가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연다. 요즘 동호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새소리를 찾아 중미산자연휴양림 임도를 걷는 양경모 에코홀씨샵 대표. 김영주 기자

새소리를 찾아 중미산자연휴양림 임도를 걷는 양경모 에코홀씨샵 대표. 김영주 기자

그는 12년 전 경기 양평군 서종면 정배리에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했다. 일과 휴식을 겸한 공간이다. 뒤꼍 돌담에 딱새가 집을 짓고, 집과 연결된 숲은 덩굴식물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한 ‘자연 속 집’이다. 또 집 앞으론 중미산(833m)과 유명산(864m) 자락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개울을 이룬다. 사운드스케이프를 경험하러 가는 곳은 집에서 20분 거리, 중미산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입구 맞은편 임도(林道)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오솔길이지만, 평소엔 차량 통행이 금지돼 있어 호젓하다. 임도를 따라 왕복 2㎞, 해질녘, 한두 시간 걷기에 좋은 길이다. 지난달 31일 오후 5시 30분. 함께 숲에 들었다.

양경모 대표의 집 뒤편 숲에 있는 딱새의 둥지. 딱새는 구멍이 난 곳에 둥지를 튼다. 김영주 기자

양경모 대표의 집 뒤편 숲에 있는 딱새의 둥지. 딱새는 구멍이 난 곳에 둥지를 튼다. 김영주 기자

“꾸꾸 꾸꾸.”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새소리가 들렸다. 음역 1000~2000헤르츠(hertz)대의 중저음이다.
“무슨 소린 줄 알겠어요? 벙어리뻐꾸기 소리입니다.” 숲소리 해설사를 자처한 양 대표의 첫 마디였다.

벙어리뻐꾸기? ‘뻐꾹 뻐꾹’ 소리를 내는 뻐꾸기는 알았지만, 벙어리뻐꾸기라는 새가 있는 줄은 몰랐다. 벙어리라는 이름을 가진 새가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다니.

“뻐꾸기는 여름 철새에요. 동남아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한국으로 옵니다. 우리나라엔 네다섯 종류가 있는데 뻐꾸기, 벙어리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두견이 등이에요. 뻐꾸기는 노래에도 있는 것처럼 ‘뻐꾹 뻐꾹’ 울고, 벙어리뻐꾸기는 저렇게 저음으로 ‘꾸꾸 꾸꾸’ 합니다. 비슷하게 우는 새 중에 같은 여름 철새인 멧비둘기가 있어요. 아마 좀 있으면 들릴 겁니다. ‘구 구 구 구’ 이렇게 소리를 내거든요. 잘 들어보세요.”

집중해서 들으니 정말, 비둘기처럼 우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렸다. ‘멧’은 산이라는 뜻, 그래서 산비둘기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엔 도심 주변부에 더 많다고 한다. 산보다 먹이를 더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내려왔을 터다.

임도 양옆으로 작은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가운데, 저음의 벙어리뻐꾸기와 멧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짹짹” “꾸꾸” “구구구구” 리듬을 타고 들리는 듯 했다. 찌르레기처럼 우는 산솔새의 “찌르르르르”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평소 산에 다닐 때도 분명 들었을 테지만, 무심코 지나쳐버린 새소리를 전문가의 몇 마디 조언 덕분에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귀가 트인 듯’ 신기한 경험이었다.

최근 일반 동호인이 손쉽게 새소리를 찾아 나서게 된 건 버드넷(BirdNET)이라는 앱 덕분이기도 하다. 1년 전에 출시한 이 앱은 모바일을 통해 녹음된 몇초 간의 새 울음소리를 분석(analyze)하고 판독한 뒤, 어느 새인지 알려준다. 영문 앱이지만 마지막에 ‘ebird’ 기능을 활용하면 번역까지 돼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