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셀프특혜' 논란 유공자법 통과…거야 끝까지 입법독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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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종료를 하루 앞둔 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도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로 마무리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28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쟁점 법안 5건을 밀어붙였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관계자가 본회의장 문을 닫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관계자가 본회의장 문을 닫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논란이 된 법안은 재석 의원 161명 전원이 찬성해 본회의를 통과한 민주유공자법이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가 발생한 1964년 3월 24일 이후의 민주화 운동 사망자와 부상자, 그 가족과 유가족을 유공자로 인정해 지원하는 내용이다. 당초 교육·취업까지 지원하는 내용이 민주당 초안에 담겨 논란이 되자 지원 범위를 의료·양로·요양으로 줄였지만,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던 법안이다.

특히 지원 대상이 논란거리다. 이 법안 제4조는 지원 대상자에 대해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기여한 희생 또는 공헌이 명백히 인정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람”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주화운동 사망자·행방불명자 또는 부상자’로 명시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지원 대상이 너무 포괄적이라 부산 동의대 사건,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까지 유공자로 둔갑시킬 수 있는 악법”이라고 지적했다.

부산 동의대 사건은 1989년 3월 21일 사복 경찰 5명을 붙잡은 학생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 7명이 사망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은 1989년 서울대생들이 민간인을 정보기관 내통자(프락치)로 오해해 감금·폭행한 사건이다. 1979년 발생한 남민전 사건은 관련자들이 무장 강도 논란 등을 빚었고, 남민전은 반국가단체 판결을 받았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의결되기 전 국민의힘 의석이 텅 비어 있다. 뉴시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의결되기 전 국민의힘 의석이 텅 비어 있다. 뉴시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도 여당 의원 퇴장 속에 재석 의원 17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개정안은 전세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을 국가가 물어준 뒤 나중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자금을 회수하는 ‘선(先)구제 후(後)회수’가 골자다.

앞서 정부·여당은 개정안 통과를 강하게 반대했다. 피해 구제 비용이 3~4조원이나 들어가는 데다가, 서민이 청약을 위해 맡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기금을 투입하는 것도 문제라는 논거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마디로 악성 임대인의 채무를 국가가 갚자는 것으로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전문가들도 법리상 문제와 집행 불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안 통과 직후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제안하겠다”며 “정부안과 야당안을 충분히 논의해 국민이 소상히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전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피해 주택을 경매를 통해 매입한 뒤, 공공임대로 피해자에게 장기 제공하는 방식의 정부안을 발표했다. 이에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일국 장관이 국회 입법권을 이렇게까지 능멸해도 되는 거냐”고 반발했다.

한우 농가에 경영 개선 지원금을 지급하는 지속가능한 한우산업법, 농어업인 대표 조직 설립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농어업회의소법,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의료비 지원 기한을 5년 연장하는 세월호 피해지원법 개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다만 여당이 처리를 벼르던 양곡관리법, 농수산물가격안정법,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여야 이견이 크다는 이유로 김진표 국회의장이 상정하지 않았다.

김진표 국회의장(왼쪽)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민주유공자법),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에 대한 표결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대화하던 중 본회의 부의 요구 법률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왼쪽)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민주유공자법),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에 대한 표결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대화하던 중 본회의 부의 요구 법률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거대 야당이 21대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까지 완력으로 민감한 법안을 처리하자 “협치가 실종된 22대 국회의 예고편”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여야의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사회적 논의도 성숙해 있지 않은 법안들이 일방 독주로 처리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5개 법안에 대해 29일 당 차원에서 거부권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유공자법과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은 나머지 3개 법안에 대해서는 숙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이 거부권을 제안하면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해당 법안들은 22대 국회로 넘어가지 않고, 즉각 폐기된다. 윤 대통령은 앞서 채상병 특검법까지 거부권을 10번 행사했다.

이해찬 “尹 정부 빨리 끌어내리란 요구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상임고문이 27일 오후 여의도 민주연구원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초선의원 혁신강좌'에서 강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상임고문이 27일 오후 여의도 민주연구원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초선의원 혁신강좌'에서 강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은 27일 민주연구원에서 열린 초선 당선인 강좌에서 “윤석열 정부가 무도한 2년을 했기 때문에 ‘빨리 끌어내려야 한다’라거나 ‘3년이 길다’는 국민 요구가 많다”고 주장했다. 이 상임고문은 “지금부터가 윤석열 정부와 싸워야 하는 시기”라며 “초반 2년은 중앙당 대여 투쟁에 비중을 많이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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