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기 창조인상] 고전·현대음악 넘나드는 혁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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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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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기로 소문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말러리안’ 프로젝트부터 게임 팬들이 열광하는 ‘스타크래프트’와 ‘가디언 테일즈’ 게임 음악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지휘자 진솔(37)에게는 ‘드문 여성 지휘자’라는 표현보다는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넘나드는 젊은 혁신가’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그는 처음에는 정통 코스를 밟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독일 만하임 국립음악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독일 바덴바덴 필하모니를 비롯한 여러 해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국제적인 경력을 쌓았다. 귀국 후에는 KBS 교향악단과 부천필하모닉 등과 협업했다.

10여 년 전에 비상설 앙상블(합주 단체) ‘아르티제’를 창단하면서 파격적인 행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르티제를 중심으로 여러 말러 팬 연주자들을 모아 진행하는 말러리안 프로젝트가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그는 국내 최초의 게임 음악 전문 공연 플랫폼 ‘플래직(FLASIC)’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으로, 게임 음악 공연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더욱 친숙해진 계기는 지난해 TV드라마 ‘마에스트라’에서 오케스트라 총괄 자문과 주연 배우 이영애의 지휘 레슨을 담당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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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친은 작곡가 진규영 영남대 명예교수이고 모친은 소프라노 이병렬 성악가다. 이렇게 음악적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은 그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원치 않았다. “부모님이 대중에게 인기 없는 현대 클래식 음악을 고집하면서도, 그 현실을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것 같다”고 진 지휘자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할 운명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겪으며 온라인 게임에서 위안을 얻을 때도 그 음악이 뇌리에 남아 훗날 게임 음악 공연을 개척하게 됐다. 일본 거장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영상을 보고 지휘자의 꿈을 품게 됐다.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치자 그는 가출까지 감행해 입시를 준비한 후 한예종에 진학해 음악의 길을 걷게 됐다.

진 지휘자는 올해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발전시켜 나가되 여유가 될 때마다 다른 프로젝트를 하나씩 추가하며 장기적으로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로는 ‘슬픔과 위로의 음악’인 레퀴엠(위령미사곡)을 유명한 고전음악가의 것부터 시작해 현대 창작 레퀴엠까지 10여 년간 연주하는 ‘아르티제 레퀴엠 시리즈’가 있다. 그 첫 공연인 ‘모차르트: 레퀴엠’이 오는 6월 12일에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전 세계 젊은 작곡가들로부터 네오클래식 창작 음악 공모를 받는 ‘아르티제 오버 더 클래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진 지휘자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며 “여성 지휘자를 넘어 이전에 세상에 없던 존재가 되고 싶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진솔 지휘자

◦ 1987년생
◦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학사
 만하임 국립음악대학 석사
◦ 앙상블 아르티제 창단연주회 (2014)
◦ 말러리안 시리즈 1, 2 (2017)
◦ 스타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 (2019)
◦ 말러리안 시리즈 6 (2023)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열다섯 번째 영예를 안은 올해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힘과 긍지를 세계에 떨치고 새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김명자 KAIST 이사장,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 유욱준 한림과학기술한림원장, 김은미 서울대 교수, 주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건용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맡았다. 김명자 심사위원장은 “돋보이는 창의성과 혁신성으로 우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젊은 세대 리더를 발굴하면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유민(維民) 홍진기(1917~86)한국 최초 민간 방송인 동양방송(TBC)을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의 대표 언론으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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