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 경단녀가 스펙이다, 前 미국회계사가 찾은 ‘천직’

  • 카드 발행 일시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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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직업’

푸르렀던 20대 꿈과 성공을 좇아 선택한 직업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20년, 30년 지나면 떠날 때가 다가오죠.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닥쳤든, 몸과 마음이 지쳤든, 더는 재미가 없든, 회사가 필요로 하지 않든…오래 한 일을 그만둔 이유는 사실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할 용기입니다. ‘환승직업’은 기존 직업과 정반대의 업(業)에 도전한 4050들의 전직 이야기입니다. 고소득, 안정된 직장이란 인생 첫 직업의 기준과 다르게 ‘더 많은 땀과 느린 속도’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소개합니다. 이 직업에 관해 궁금한 모든 것, ‘A to Z 직업소개서’와 ‘전문가 검증평가서’까지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끝까지 버텨보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매일 마주 보고 일하던 동료들의 자리는 하나둘 비워졌고 탕비실에선 ‘옆 부서 누가 부산으로 발령 났대’ ‘누구도 희망퇴직 대상이래’ 등의 말이 떠돌았다. 책상엔 얼마 전 받은 ‘우수사원상’이 작은 방패처럼 서 있었다. 회사의 타깃은 50 넘은 여성. 부장·차장을 달았던 여성 동료들은 이미 회사를 떠나고 없었다. 나만 남았다. 아니,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67년생 하지민씨의 이야기다. 하씨는 2001년 미국회계사(AICPA) 자격증을 따고 삼성전자보다도 시가총액이 높다는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Nestlé)의 한국 지사에서 일했다. 정년까지 보장된다는 외국계 기업이었지만 2014년 롯데와 합작하면서 로컬 기업이 됐다. 이후 적자가 누적되면서 구조조정은 연례행사가 됐고 하씨 역시 이를 비켜갈 수 없었다.

“평생을 바쳤는데 그걸 인정받지 못하고 등 떠밀려 나가게 됐을 때 충격이 상당했죠.” 하씨는 자신의 상처를 발판으로 삼았다. 자신처럼 희망퇴직으로 밀려난 4050,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못한 2030 등 방황하는 이들의 고충을 듣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직업상담사’가 되기로 했다. 같은 ‘사’자여도 회계사였을 때(7500만원)에 비해 연봉은 3분의 1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하씨는 “숫자가 아닌 사람과 소통하면서 오는 감동과 만족감이 있다”고 했다.

지난달 1일 휴먼잡트러스트 서구지점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하지민씨. 석경민 기자

지난달 1일 휴먼잡트러스트 서구지점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하지민씨. 석경민 기자

18년 가까이 회계사로 일한 하씨가 선택한 직업상담사. 지난해 기준 2급 자격증 취득자의 46%가 4050이었던 만큼 직업상담사는 중장년이 도전하기에 적합한 직업으로 꼽힌다. 이 직업이 유독 4050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56세의 나이로 직업상담사 2급을 취득해 일을 시작한 하씨의 근무 현장을 동행했다. 그가 하는 일, 만나는 사람, 노하우, 연봉 등 직업상담사의 모든 것을 취재해서 ‘환승직업’에 담았다.

📃목차

1. 70명 구직자의 담임선생님
2. 연봉 7500만원 미국회계사에게 남은 상처
3. 삶의 굴곡, 인생 2막의 발판이었다
4. 경력단절 4050이어서 잘할 수 있는 일

1. 70명 구직자의 담임선생님 

지난 3월 29일 인천시 서구 취업컨설팅기업 ‘휴먼잡트러스트’의 상담실. 하지민 직업상담사가 20대 남성 민모씨의 직업심리검사 결과를 들여다보며 상담을 진행했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천장 몰딩’ 사업을 했던 민씨는 벌이가 시원치 않자 사업을 그만두고, 반도체 회사에 1년간 다니면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군대에 다녀온 그는 ‘기술로 먹고사는 일이라면 자신 있다’는 생각에 전기 기술자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정부 지원을 통해 취업 정보를 무료로 알려준다는 휴먼잡트러스트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