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바르드나제의 도전장(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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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르바초프의 강력한 동반자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사임선언으로 소련의 개혁은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다.
그 동안 보수세력에 밀려 갈팡질팡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오던 고르바초프에게 과거로의 회귀냐,아니면 강력한 개혁으로의 전진이냐의 결단을 촉구하는 결정적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셰바르드나제가 사임연설에서 지적했듯이 개혁세력의 눈으로 보자면 이번 인민대표대회에서 고르바초프가 내놓은 중앙정부 권력강화법안들은 그 동안 노력해온 민주주의 요소들을 후퇴시키는 내용들이다.
소련을 구성하고 있는 각 공화국의 분열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등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게 됨으로써 이 법안들은 1인 독재체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비판을 개혁파들로부터 받아왔다.
당의 독재체제를 해체하여 의회민주주의제도를 실현하고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하려 노력해온 장본인 고르바초프가 국내에서의 여러 차례에 걸친 좌절 끝에 스스로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와 개혁정책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막상 자기네 나라를 변혁시키는 데는 성과를 올리지 못한 데 따른 비극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그가 약속했던 개혁의 과실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등장하기 전보다 국내 상황은 더욱 나빠져 왔다고 평가되면서 위기설이 여러 차례 대두됐었다. 중앙통제의 기반을 무너뜨린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국가의 조직구조는 와해 위기를 맞고 또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경제적 파탄조짐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의지를 약화시켜 왔다.
와해되어가는 소연방을 우선 유지하기 위해 그는 그가 개혁하려 했던 공산당·군부·비밀경찰조직의 지원을 받으려고 타협책을 쓰게 됐던 것이다. 최근 내무장관을 보수세력의 인물로 대체한 것이라든가 토지사유법안을 당초의 계획에서 후퇴시킨 조치들은 그러한 타협책들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소연방을 유지하려는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태도는 그 본인의 의도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구시대의 권력구조를 등에 없고 독재체제의 길로 들어서는 보나파르티즘과 유사하다는 우려도 있어 왔다.
이러한 소련의 혼란은 그 수습방향에 따라 소련 자체뿐 아니라 국제정세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게 된다는 데서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셰바르드나제가 사임연설에서 경고했듯이 보수세력의 회귀가 실현된다면 그 동안 구축되어 가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새로운 불안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소련의 진통과 혼란은 당장 페르시아만 평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문제와 관련해서도 남북한 관계,한소 경제협력 문제 등에 새로운 변수가 된다는 데서 소련의 진로는 우리의 이해와도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소련의 내부갈등이 기왕의 개혁정책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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