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우연한’ 만남, ‘우연찮은’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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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길을 가다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 이를 ‘우연한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우연찮은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우연한 만남’은 확실히 맞는 것 같은데 ‘우연찮은 만남’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 이것도 맞는지는 헷갈린다.

‘우연찮다’는 ‘우연하지+아니하다’의 준말이다. 구조상으로 ‘우연하다’를 부정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대로 풀이하면 “우연찮게 만났다”는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의도해 만난 것이 된다. ‘시원하게/시원찮게’ ‘수월하게/수월찮게’ ‘심심하게/심심찮게’ 등이 각각 반대 뜻인 것을 생각하면 ‘우연찮게’ 역시 ‘우연하게’의 반대말이 돼야 한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우연찮다’가 원래는 ‘우연하다’와 상반된 뜻이지만 ‘우연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현실을 감안해 동일한 뜻의 표준어로 인정했다. 다만 ‘우연찮다’는 ‘꼭 우연한 것은 아니나 뜻하지도 아니하다’는 다소 모호한 설명을 달았다. 어쨌거나 ‘우연한’ ‘우연찮은’은 어느 것을 써도 문제가 없다.

원래는 반대 의미가 돼야 하나 이처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로는 ‘엉터리다’ ‘엉터리없다’가 있다.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으로 둘 다 쓰이고 있다. 즉 “그 사람 말은 엉터리야” “그 사람 말은 엉터리없어” 모두 같은 뜻의 말이다.

‘주책이다’ ‘주책없다’도 마찬가지다. ‘주책’은 주관이 뚜렷한 것을 뜻한다. 따라서 ‘없다’를 붙여 ‘주책없다’고 해야 줏대가 없다는 의미가 성립한다. 그러나 국어원은 널리 쓰이는 점을 들어 ‘주책이다’도 동일한 뜻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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