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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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70년대까지만 해도 몇몇 시인에 의해 쓰여지던 사설시조가 8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창작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현상은 두 가지 점에서 특기할만한 것이었다. 그 첫째는 시조의 주제확산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둘째는 시조형식의 확대를 재차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80년대 이후 이러한 현상은 비단 시조 단만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70년대 이후 한국시의 전반적인 반성이 문단의 일각에서 심각하게 논의되었던 것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 마땅하다. 아무튼 사설시조의 본격적인 창작시대에 걸 맞는 투고 작품을 매번 기대하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섭섭하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장원에 뽑힌 이인순 씨의 "상사화"는 나름대로 작시법을 터득한 작품이다. 「목젖이 잠겨 신열 앓는 꽃」이라든지 「조선파 매운 잎을 분수처럼 뽑고 서서」와 같은 구절들이 이러한 생각을 뒷 받침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차상에 오른 김상곤 씨의 "제주소견"은 앞에서 말한 사설시조와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사설을 풀어가는 과정의 수련을 어느 정도만 거친다면 어떤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뽑았다. 「건장한 젊은 사내도 외로움을 타는 바다여」와 같은 구절이 어떻게 사설의 가락에 얹힐 것인가를 좀더 숙고해야 할 것이다. 차하에 든 이우식 씨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의 미소"도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이었다. 그러나 상을 압축하여 말을 아끼는데 더 노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들 세 편 외의 입선작들은 모두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못 미치는 구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주제에 너무 매달려 넓은 시각과 신선한 감각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작품으로서는 모자란 듯 하더라도 좀더 새로운 상과 언어를 붙잡아내는 노력과 함께 안이한 처리법에서 과감히 탈피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치열한 시정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심사위원 윤금초·박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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