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쇠고기 혹독한 입국 신고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 금지 3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지만 한 달 가까이 인천공항의 냉동창고에 갇혀 있다. 지난달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9t의 살코기가 들어왔지만 26일째 온갖 검사를 받으며 혹독한 '입국 신고식'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애초 '30개월 미만 소의 살코기'는 광우병 우려가 없다고 판단, 수입이 재개되면 바로 시중에 유통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국내 축산농가와 시민단체의 요구로 수입 위생조건이 계속 까다로워지면서 미국 쇠고기는 식탁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절차를 거치게 됐다.

현재 미생물과 잔류물질 검사 등을 모두 끝냈고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이 안전성에 대해 더 철저한 검증을 계속 요구 중이다. 농림부는 이에 따라 애초 네 번째 수입분까지 실시할 예정이던 전체 물량에 대한 검사(전수검사)를 무기한 연장하고 '식육이물검출기(X선)'를 도입해 정밀검사를 강화키로 했다. X선은 살코기 속의 미세한 뼛조각까지 찾아낼 수 있다. 농림부는 연내 12대를 도입한 뒤 내년 초까지 전국 69개 검역 시행장에 X선을 1대 이상씩 설치하기로 했다. 한국이 검역을 강화하자 미국 측의 움직임도 민감해졌다. 이달 17일 미국은 농무부 램버트 차관보를 한국에 급파했다.

램버트 차관보는 이날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을 만나 "올 1월 합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철저히 준수해 달라"고 요구했다. "뼛조각은 소 내장 등과 달리 광우병 위험물질이 아니다"며 "한국이 검역기준을 기존의 합의 수준 이상으로 강화하지 말라"고 압박한 것이다.

미국은 축산물 교역 기준을 설정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에도 내년 2월께 '미국산 쇠고기의 뼛조각은 광우병 우려가 없다'는 새로운 국제 가이드라인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입장은 완강하다. 광우병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뼛조각의 국내 유입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X선 검사를 놓고 방사선 노출 위험이 제기돼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현재 규정으론 X선 검사로 척수 등 광우병 위험물질이 발견되면 수입이 전면 중단된다. 또 일정 크기 이상의 뼛조각이 나오면 미국 현지 해당 작업장의 쇠고기에 대해 수입 중단 조치가 취해진다.

논란이 끝나 안정성이 확인되고 시중에 유통된다 해도 미국 쇠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민주노동당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미국산 쇠고기를 모두 구입, 폐기처분한다고 선언한 데다 백화점과 유통업체들도 시민단체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판매를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