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에 깎인 민생치안 예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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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범죄가 우리 사회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범죄와의 전쟁」까지 선언했던 정부가 이를 위한 예산은 오히려 더 깎아내리고 있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91년도 내무부 예산안에 따르면 범인검거나 범죄소탕을 위한 민생치안 예산은 2백94억원으로,이는 90년도 본예산 3백95억원에서 25.6%가 준 액수다.
더구나 올해의 경우 추경과 예비비를 합쳐 9백57억원이 투입됐던 데 비하면 무려 69.3%가 깎인 규모라는 것이다.
내무부는 물론,정부가 다급할 때면 입버릇처럼 말해온 완벽한 검거체제 확립이나 장비보강·근무여건 개선에 의한 경찰의 범죄대응 역량강화는 빈말이었는지 묻고 싶다.
아니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연말까지는 범죄를 이 사회에서 추방하고 내년부터는 민생치안 수요를 그만큼 줄이는 대신 시국치안에만 열중하겠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갈수록 늘어나는 민생치안 수요가 뻔히 내다 보이는데도 그 예산을 줄이고 대공이나 정보 쪽의 예산만 늘려놓을 수 있겠는가.
국가 전체예산을 놓고 한정된 특정분야에 배당된 액수가 많고 적음을 이야기하기는 물론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내년에도 추경예산이 있고 벌과금 등으로 조성되는 사법특별회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별한 예산이지 계획된 경찰력 보강예산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기본을 흔드는 범죄문제에 기본예산을 깎아놓고 추가재원이 생기면 투입하겠다는 발상이라면 그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관할인구가 40만을 넘어 60만∼70만명에 이르는 경찰서를 두고도 돈이 생기면 더 늘리겠다든지,하루평균 14시간 이상을 근무하다 관내에 사건이나 터지면 며칠이고 밤샘을 해야하는 근무여건 아래서 인력증원 예산을 4분의1 이하로 깎아 내려놓고도 닦달만 한다고 민생치안확립을 기대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더구나 갈수록 기동화·지능화하고 있는 범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과학적인 장비보강이 시급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정부가 정작 예산안에서는 순찰차량의 컴퓨터화나 도난범죄차량 자동판독기 구입예산 50억원을 전액 삭제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루에도 7∼8대 이상의 차량이 도난당하고,그 대부분이 전국을 누비며 기동성 범죄에 이용되는데도 우리의 경우 도난차량 자동판독기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다. 순찰차는 크게 늘려놓았지만 도난차량신고를 신속하게 확인하거나 우범자를 검거한 뒤 즉석에서 신원조회를 할 수 있는 컴퓨터 단말기 장치가 없어 능동적으로 범죄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가 6공 정권의 명예를 걸고 범죄를 제압하겠다고 나섰을 때 대부분의 국민은 시의적절한 결심이었다는 기대와 함께 시국치안을 겨냥한 공포분위기 조성에 흐를 위험도 우려했었다. 전체적으로는 경찰에 배정된 예산이 22% 늘어났지만 예산배분의 비중을 시국치안에 두고 민생치안을 소홀히 한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우선순위를 뒤로 돌리고 투자는 안하면서 범죄에 대한 공포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말은 열번 아니 백번을 해도 빈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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