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정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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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서울에서 보여준 경기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바로 50여 일 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기록했던 선수들이 이번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선 상식 밖의 경기를 했다.
경기에 진 것은 나중 문제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도 졌다면 사람들은 이긴 것 못지않게 오히려 선수들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상황은 그 반대였다.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보며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승부가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스포츠 세계엔 인간정신의 극치를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가 있다.
한 운동선수가 경기장에 이르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으며,또 경기의 나날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선수들의 동작 하나,순발력,재치와 판단은 그런 노고의 총화로 나타난 것이다. 스포츠의 감동은 그 때문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엊그제 보여준 경기는 그 모든 것을 부인하는 졸렬한 모습이었다.
가십으로 흘러나오는 후문으로는 북경 아시안게임 이후 협회의 무성의한 보상과 무관심,감독의 무책임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선수들에게 있다. 그것은 근본의 문제다.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리스의 한 무명청년이 마라톤에서 1등을 했다. 양치기와 우체국 집배원 출신인 스피리돈 루이스라는 선수였다. 그가 평지돌출로 소문도 없이 1등을 하자 그리스는 온통 야단법석이 났다. 사방에서 선물이 밀려 들어오고,행운의 약속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루이스 선수는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묵묵히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무엇을 바라고 뛴 것이 아니고,자신을 위해 뛴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으로 그는 만족했다. 그는 당근을 바라고 뛰는 말이 아니었다.
우리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문제는 경기장 밖에서 나중에 제기했어도 세상은 따뜻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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