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프랑스 하면 누구나 그들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예술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예술을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시대마다 각 분야에서 창조적 열정을 기울인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의 공헌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을 뒤에서 지원하고 또 보호한 정부당국의 정책적 노력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는 문화예술진흥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게 하나의 추세다.
프랑스의 경우는 그 동안 축적된 경험과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로 정책을 수립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의 모범이 되고 있다.
프랑스정부가 문화예술에 기울이는 관심과 정성은 단적으로 국가예산에 집약된다. 89년에 발표된 문화부의 예산은 약 1백억프랑.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조원이 훨씬 넘는다. 그러나 문제는 1조원이라는 액수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프랑스 전체국가예산의 1%를 상회한다는 데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정부가 이번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문화부 예산안은 총 1천91억2천8백41만8천원. 정부 총예산의 0.38% 수준이다.
문화부가 요구한 원래 예산안은 문화예술관련 사업비 1천7백56억원,경상비 2백7억6천2백만원 등 총 1천9백60억원이었다. 그것이 경제기획원의 예산조정 과정에서 거의 절반이나 삭감된 것이다.
나라의 살림을 꾸려 가자면 돈을 달란다고 해서 요구하는 대로 선뜻 내줄 수는 없다. 깎을 것은 깎고 더 쓸 곳은 더 줘야 하는 게 살림살이의 요체다.
그러나 이번 문화부의 예산은 좀 다르다. 6공화국이 이른바 「문화입국」을 내세우며 지난 1월 새로 출범시킨 게 문화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문화부 신설을 쌍수로 환영하면서 앞으로 문화예술의 진흥과 함께 국민의 문화향수권이 크게 신장되리라 믿었다.
그 문화부가 「문화발전 10개년계획」 등을 포함하여 의욕적으로 내놓은 예산안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무참히 짓밟혀 버린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없이 어찌 「문화입국」을 바라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