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선 타협정치/여야 대표 국회연설을 듣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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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대표의 국회 대표연설을 보면 여야가 지난 4개월간 격심한 정치파행상태를 겪은 후 평민당의 등원으로 국회가 어렵게 정상화됐음에도 앞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안정을 일구어낼 가망이 옅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여야 대표는 다같이 국민의 정치불신을 야기한 데 대해 사과하고 정치복원의 필요성에 인식을 공유해 정국안정을 염원해온 여론에 부응하는 수사적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여야는 그것을 뒷받침하고 접점을 찾을 만큼 구체적이고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치불신의 원인과 처방에 서로 현격한 입장차를 보여 주어 현안의 합의도출이 어려우리라는 예상을 던지고 있다.
민자당이 사회의 총체적 위기상황의 원인을 정치에서 찾고 정치인의 자성과 솔선수범을 강조한 것은 평가할 만하나 그에 대한 책임을 여측 스스로 지지 않고 야측과 반분하려는 자세는 시작부터 대야 교섭의 앞날을 밝지 않게 하고 있다.
여당이 책임공유론을 현안접근의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지자제문제,안기부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여야 합의의 길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대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한 여당이라면 국민과 야당이 납득할 만한 상응한 방안을 제시하고 타협과 절충으로 합의를 이루어 가겠다는 사고의 전환이 절실함에도 여당 대표의 연설에서는 그런 의지를 실천할 분명한 증좌를 찾기 어렵다.
야측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평민당은 정치불신의 근본원인을 정치도의의 상실에서 찾고 그 책임을 전적으로 「3당야합」이라는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자기면책론으로 일관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에 깐다면 당초부터 타협의 논리가 설 땅이 좁아지게 마련이어서 25일밖에 남지 않은 회기중에 새해 예산안과 추곡수매는 말할 것도 없고 주요 개혁입법에 대해 여측과의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양측 대표연설은 여야의 입장차이에서,또 협상의 유리한 국면조성의 차원에서 상황인식과 대응양식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양당 대표의 시각과 처방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개혁이 시급하다는 상황인식을 같이한 점에 우리의 기대는 크다.
이것은 정치권이 국민의 극심한 정치불신에서 공감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개혁을 같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자각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가 수의 논리나 독선과 아집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구태의 정치에 매달려서는 안 되며 접점을 찾는 타협의 큰 정치를 해야 한다.
여야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어느 한 편의 완승을 노리는 정치를 결코 해서는 안 되며 인기관리만이 정치의 전부인 양 인식하는 태도를 지양,이 시대의 어려움을 냉철한 이성의 바탕에서 같이 풀어나가는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를 보여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 그래서 여야는 양당 대표의 연설을 불안하게 보는 우리의 우려를 기우로 돌리면서 여야간 대화정치를 복원하고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승화시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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