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구천동(九天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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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구천동(九天洞)'- 박태일(1954~ )

사람들은 혼자 아름다운 여울, 흐르다가 흐르다가 힘이 다하면 바위귀에 하얗게 어깨를 털어버린다. 새도 날지 않고 너도 찾지 않는 여울가에서 며칠째 잠이나 잤다. 두려울 땐 잠 근처까지 밀려 갔다 밀려 오곤 했다. 그림자를 턱까지 끌어당기며 오리목(五里木)마저 숲으로 돌아누운 저녁, 바람의 눈썹에 매달리어 숨었다. 울었다. 구천동(九天洞) 모르게 숨어 울었다.



사람이 '혼자 아름다운 여울'이라고 한다. 흐르다가 하얗게 바위귀에 어깨를 털어버린다고 한다. 가슴 떨리지 않는가. 이쯤에서 숨 한번 내리쉬고 소(沼) 만나면 잠이나 잔다고 한다. 차고 맑은 잠이리라. 바람 불면 숨어 운다. 울음 안 나오고 배길 수 없으리라. 아홉 하늘 내려와 아홉 굽이 울며 내려가는 물소리. 맑디맑은 그 걸음걸이 배우고 싶으나.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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