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단속에 관은 성역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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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관청의 행정이란 편파나 편향됨이 없이 공평하고 엄정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요 법도임은 이미 상식에 속하는 국민과의 합의다. 이 원칙과 법도가 무너져 관의 시정이 형평을 잃고 시혜나 단속이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면 관의 권위가 훼손돼 영이 서질 않고 국민의 비웃음을 사거나 저항을 받게 되기 십상이다. 요즈음 서울시가 공해배출 업소를 단속하면서 하는 행태가 바로 이런 꼴이다.
서울시가 대기배출 업소에 대한 공해단속에서 위반업소에 고발 등 행정조치를 내리면서 이른바 공공건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사용이 금지된 벙커C유를 쓰고 있는 건물 중에 목욕탕 등 중소업소의 건물에 대해서는 연료변경 명령위반으로 시설사용 중지명령이나 고발조치를 하면서도 똑같이 고발 대상이어야 할 경찰서·안기부·군부대·교육청 등 대형 공공건물은 이를 묵인하고 겨우 연료변경 촉구 공문만을 보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동일한 내용의 행정명령위반 사항에 대해 만만한 중소업체는 처벌을 하면서도 이른바 힘깨나 쓰는 「기관」은 이를 묵인하고 봐주는 결과가 된 셈이다.
물론 이들 기관건물이 문자 그대로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란 사실은 틀림없다. 그러나 배출되는 공해가스가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서 공해가 덜하거나 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부족한 국가예산만 구실로 찾다 보면 시설개체는 한도 끝도 없이 요원해질 것이고 따라서 내뿜는 공해의 농도는 다른 어느 건물보다 더욱 짙어져 결국 대기오염의 으뜸가는 원흉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도 공공기관 타령만 하면서 계속 묵인하고 힘없는 목욕탕 따위만 단속하고 있으면 서울의 대기가 맑아지리라고 믿는단 말인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온 세계는 지금 대기공해를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 공해를 방치했다가는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내뿜는 공해가스로 인해 지구자체의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공해와의 전쟁」까지 선포할 지경에 있는 것이다.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기후회의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탄산가스의 배출을 규제하는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토의한 바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탄산가스 억제를 위한 전국민의 행동계획을 만들고 있다. 하물며 선진국보다 몇 배의 대기오염에 빠져 있는 서울에서 공해단속에 형평마저 잃고 있다니 당국의 공해인식 자체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에게 수범해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공해배출의 주범 노릇을 하고,이를 누구보다 앞서 단속해야 할 당국이 앞장서서 묵인하고 비호한다면 어느 누가 관의 명령을 자발적으로 따를 것인가.
대기오염을 줄이는 일은 우리에게 떨어진 「발등의 불」이라는 인식과 이에 대처하는 작업은 우리 국민 모두의 화급하고 심각한 과제다. 이런 인식과 행동에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이를 이끌어야 할 1차적인 책무는 바로 규제에서 제외되고 있는 관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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