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에 쓰인 기술개발자금(기자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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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화 한통에 3억대출… 뒷거래 여전
최근 고위공직자들의 부정ㆍ비리사건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나라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경제기획원의 1급 간부가 정부투자기관에서 기술개발자금을 끌어다 부동산투기를 하다가 검찰에 구속됐다.
뭔가 잘못돼도 이만저만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같은 일이 가능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돈을 빌려 주었던 (주)한국기술개발은 지난 81년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정부지분율이 22.1%나 되는 정부투자기관이다.
기술개발을 장려ㆍ지원한다는 목적에 의해 설립된 회사여서 세제ㆍ금융상 각종 특혜도 받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정부로부터 1백50억원의 재정융자금을 받기도 했다.
이자금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한국개술개발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기획원 관리」인 이상만씨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천원공업이라는 「회사」에 빌려준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천원공업이 철도레일을 연결하는 쐐기를 개발하겠다며 필요자금 융자를 신청해 왔고 심의결과 경제성ㆍ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돼 빌려주었다는 얘기다.
돈을 빌려준뒤 사용내용에 관한 영수증도 모두 받았으며 결국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주장까지 덧붙이고 있다.
사업계획서나 영수증이 가짜로 작성된 것으로 검찰에서 밝혀진 부분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일일이 다 체크하기 어려웠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두푼도 아니고 3억원이나 되는 돈을 빌려주면서 어떻게 썼는지를 챙기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 검찰조사결과 이씨가 한국기술개발에 전화를 걸어 천원공업에 돈을 빌려주도록 부탁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직위를 이용한 부정ㆍ비리는 5공 비리사건들을 통해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바 있다.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우고 있는 6공에도 이같은 떳떳지 못한 「거래」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음은 우리사회의 갈길이 멀기만함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좌들인 셈이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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