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시비」는 사회병리의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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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최근 모 병원의 전공의(레지던트)선발과 관련한 금품수수 물의를 접한 일반시민들은 얼마전 의사가 혼수를 시비 삼아 아내를 구타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당혹스러움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같은 전공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일련의 「위신 추락」사태들은 어제 오늘의 일도, 의사들만의 일도 아님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의사 사회는 결국 전체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게 될 뿐이며 의사들 또한 한사람의 사회인·직업인 일뿐 별개의 인간부류가 결코 아닌 것이다.
현재 전국 31개의 의과대학에서 매년 3천 여명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 나라 의과대학 교육이 안고 있는 한계 때문에 대부분(아마도 90% 이상) 전공의 코스 밟기를 원하게 된다:
의과대학 과정이 실질적 임상교육 및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마치 전공의 교육을 위한 예비교육 기간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국 각지에서 매년 2천9백여명의 인턴과 2천3백여명의 레지던트를 선발하고 있어 이러한 전문의 선호 추세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많은 수의 병원들은 인턴·레지던트 수련과정을 제대로 마련해 놓지도 못한 처지에서 값싼 인력의 이용을 겨냥하여 수련의들을 선발하기 때문에 결국 선호도가 떨어지고, 따라서 많은 지망자들은 대학 병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의 일류 대학병원이라고 해서 인턴·레지던트 수련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 영·미식 인턴·레지던트 제도가 도입된 이래 수십년 동안 나름대로의 제도로서 성장되어 왔으나 제대로 표준화되거나 정비되기 못한 형편이다. 특히 선발과정은 완전공개 경쟁이라기보다 해당과의 과장이나 교수들, 그리고 때로는 선배의사들의 동의를 거쳐야만 가능한 경우가 많아 아직까지도 도제적 교육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마치 민주적 공교육 제도에서와 같이 미리 정해진 연한동안 여러 분야의 여러 스승들로부터 배우면서 사제관계나 선후배 관계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그러한 관행 및 제도는 아직 요원한 것이다.
전공의 자체의 문제들은 원칙적으로 우리들 전공의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될 것이지만, 한국 의료현실의 많은 모순·문제들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제도개선에 의료인들의 힘뿐만 아니라 사회의 관심과 조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지홍<인도주의실천 의사협 전공의 공동대표·연세의료원 레지던트 l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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