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27년간 남편에 실망한 적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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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편은 나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깊은 감동을 받곤 했죠."

5월 세상을 떠난 고(故) 이종욱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부인인 일본인 가부라키 레이코(鏑木玲子.61.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파라다이스 그룹이 매년 수여하는 '파라다이스상'의 특별공로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고인을 대신해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전 총장은 어린이와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13일 내한한 그는 "지금도 남편이 눈 앞에 있는 것 같다"며 인터뷰 도중 수시로 울먹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1971년 한국으로 건너온 가부라키는 76년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경기도 안성시 나자로 마을에서 봉사하다 의료봉사차 그곳을 찾은 의대생 이종욱을 만났다.

"처음 봤을 때 '잘 생긴 한국 남자'라고 느꼈어요. 봉사활동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아 '정말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죠."

수녀가 되려던 그는 마음을 바꿔 79년 이 전 총장과 결혼한다. 이 전 총장은 청빈한 생활로 유명하다. WHO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 예산 절감을 위해 소형 임대주택에서 지냈고, 관용차 대신 소형 하이브리드카를 타고 다녔다.

가부라키는 5년 전부터 페루의 봉사단체인 '소이오스 엔 살루드(Socios En Salud)에서 결핵환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받을 상금 4000만원 전액도 페루 빈민들을 위해 쓰기로 결정했다.

그는 14일 소피텔앰버서더 호텔에서 파라다이스상을 받은 뒤 15일엔 고인의 묘소가 있는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을 예정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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