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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통 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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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요즘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학창시절 운동회는 손꼽아 기다리던 행사였다. 특히 육상 릴레이 경주는 ‘운동회의 꽃’이었다. 주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때마다 운동장은 환호와 탄식으로 메아리쳤다.

릴레이는 4명의 주자가 한 팀이다. 국제육상경기연맹에서 공인하는 종목은 100m, 200m, 400m, 500m, 800m, 1500m다. 릴레이에서 배턴 패스(Baton Pass)는 아주 중요하다. 국내에선 흔히 바통 터치(Baton Touch)로 불린다. 먼저 뛴 주자가 다음 순서 주자에게 긴 막대기 모양의 배턴을 넘겨주는데, 대기선에서 20m 안 배턴 존(Baton Zone)에서 이뤄져야 한다.

각 주자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배턴 패스에 따라 경기 기록이 달라진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400m 릴레이(남자)에 참여한 일본팀은 개별 주자의 100m 기록이 평균 9초대인 다른 국가팀들보다 기량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일본팀은 배턴을 아래에서 위로 건네는 ‘언더핸드 패스’ 기술을 선보이며 아시아 최초로 동메달을 땄고 ‘배턴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지난해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도쿄올림픽에선 배턴 존을 벗어난 배턴 패스로 실격 처리당하며 ‘배턴의 저주’라는 빈축을 샀다.

400m 릴레이 세계 최고기록(남자)은 자메이카 대표팀(2012년) 보유한 36초84다. 각 주자가 100m를 평균 9초21에 달렸다. ‘인간 탄환’으로 불리는 우사인 볼트의 세계기록(9초58)보다 빠르다. 비결은 배턴 패스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면서 배턴을 주고받는 순간 주자들이 팔을 쭉 뻗으면서 거리상 이점이 생겨 개인 기록보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

앞으로 43일 후면 제20대 대통령이 제19대 대통령에게 배턴을 넘겨받는다. 그런데 두 주자는 배턴 패스 전략을 세우기는커녕 다음 주자가 정해진 지 19일이 지나서야 처음 얼굴을 본다. 한국은행·감사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주요 인사 임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코로나19가 깊게 할퀸 민생은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지쳐있다. 그만큼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대표 주자들이 팀워크를 발휘하고 치밀한 배턴 패스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배턴의 기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