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알고 지지할 정치복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밀실의 지자제 절충은 불신 더할 뿐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단식 중단과 여야대화의 재개 등으로 짜증스럽던 지난 3개월여의 정치부재상태가 곧 해소될 전망이어서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그러나 여야가 극한대치상황의 최대쟁점인 지자제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타기해야 할 구시대적 작태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서는 실망감과 함께 괴이쩍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야권 의원들의 총사퇴와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단식 등으로 이어진 야권의 극한투쟁을 유발한 근본원인은 여권이 정상정치를 외면했던 데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외형적으로는 민자당만의 무더기 의안이 날치기 통과가,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야권의 내각제개헌 추진 및 지자제 실시의 소극적 태도가 야권의 사퇴를 부추긴 요인이었다.
이 맥락에서 볼 때 여야가 진정으로 정치를 복원하고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를 제자리에 돌려놓기로 인식을 같이했다면 당연히 정치의 정도를 확립하는 방향에서 현안을 처리해야 사리에 맞지 않는가.
그러나 여야는 파행정치 상황의 타개를 위한 또다른 파행적 방법으로 협상하고 있어 설령 이번 사태가 원만히 풀린다 하더라도 정치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역기능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라의 정치발전과 지역주민의 민생에 다같이 중대변수로 작용할 지자제문제를 여야의 정략적 관점에서 몇몇 사람이 폐쇄회로에서 농단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국민의 주권 및 지역주민의 이해와 직결되는 이같이 중대한 문제를 국민은 그 내용도 모른 채 몇사람의 「밀실합의」로 처리된다는 것이 말이나 될 일인가.
3당합당이 1노 2김의 밀실정치의 소산이라 해서 민심의 배척을 받았고 또 그를 이유로 민자당 해체를 요구했던 평민당 스스로도 이 지자제문제를 「양 김의 밀실합의」로 끝마무리지으려는 현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측은 더더욱 문제가 있다. 민자당측은 4당체제 하의 합의는 3당합당에 의한 사정변경으로 무의미해졌다고 강변했는데 김대중 총재의 단식 한번으로 3당합당 이후의 사정변화가 다시 간단히 백지화될 수 있다는 뜻인가.
또 여권 수뇌부는 민자당 의총에서도 지자제 방안을 당당하게 제시하라는 요청을 받았음에도 우물쭈물하다가 여권 수뇌부 몇몇의 밀실합의로 「안개안」을 만들어 야측과 비밀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 입버릇이 된 「국민상대의 정치」는 고사하고 당내 민주화원칙에도 맞는 떳떳한 행동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여야간에 안개 피우듯 협의하는 지자제방안이 즉각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또 그것이 국회에서 여야간의 활발한 토론과 협의에 의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방향에서 확정되어야만 이 나라 민주정치발전과 주민자치의 확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따라서 여야는 이번 장기 정치부재상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도 즉각 국회를 정상화해서 국회내에서 지자제 등 모든 문제를 국민이 보는 앞에서 합리와 순리로 푸는 전통을 세워야 할 것임을 우리는 촉구한다.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이미 위험순위를 넘은 마당에 또다시 몇몇 개인의 정권욕이나 파당적 이해가 국가 중대사를 「밀약」하는 방식을 반복하게끔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떤 성질이건 간에 국민이 믿고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임을 다시한번 지적하고자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