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현대화에 앞장선 이명길씨|조선시조로 정치사상 펴 박사 학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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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고향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는 고향을 떠난 사람은 모릅니다. 시인의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문화적 풍토, 오랜 역사와 수려한 산수를 지닌 진주야말로 바로「시국」입니다.』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의 대학 유학시절을 제외하고는 진주농고 교사, 경상대 교수로 재직하며 줄곧 진주를 지키고 있는 시조 시인 이명길씨(62).
이씨는 진주만큼 문학적 여건이 잘 조성된 고장이 어디 있겠느냐 며 시인으로서 진주에서 늙고 있는 자신의 생을 한줌 아쉬움 없이 나타냈다.
1958년 위와 같은 시조를 통해 자신의 시조 관을 미력하며 시조 단에 나온 이씨는 1960년 첫 시조집『생명』에 이어『푸른 역정의 황지』(61년),『내일의 길가에서』(62년)등 시조집을 잇따라 퍼내며 생활화·현장화를 통한시조의 현대화에 앞강섰다. 또 70년『어린이시조 첫걸음』을 펴냈는가 하면 진주시내 국교를 돌아다니며 강연 등을 통해 동 시조 운동을 펴기도 했다.
한편 전공이 정치학인 이씨는 조선조 시조 3백여 수를 분석, 정치사와 연관시킨「이조정치사의 문화적 분석」으로 74년 정치학박사를 획득, 문학을 갖고 정치학박사를 딴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게 됐다.
『자유시를 써 볼까 하는 유혹도 들었으나 민족 핏속에 스며든 가락을 잡기 위해 시조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락을 잡았지 음풍농월이나 얽매인 정형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시조는 우리의 가락으로 모든 계층의 생활감정을 떠올리는 시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데뷔 절차를 거치고도 스승이나 선배의 풍을 좇아 제복소리를 못 갖는 요즘의 시조 단이 서럽습니다.』
물갈이 없이 늙어만 가는 시조 단의 노쇠 화를 개탄하는 이씨는 현재 경남 시조시인협회 회장과 진주문화원 원장을 맡으며 향토문화·문학을 지키고 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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