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정부의 「정통성 구걸」/박준영 뉴욕 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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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욕 외신기자클럽에서 알게된 한 유럽특파원이 19일 아침 느닷없이 전화를 해왔다.
한반도에서 남북한 어느쪽이 정통성 있는 정부냐는 것이다.
남한이 「유엔이 인정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모를리 없는 그에게 다시 설명을 해주며 의아한 생각이 들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최근 남북총리회담을 보면 남한정부가 정통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의 혼란은 최근 2차에 걸친 남북총리회담에 관한 외신보도,특히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난달 1차회담에 이어 이번 2차회담을 연일 관심있게 보도하고 있는 미 언론들은 일련의 남북대화에서 한국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이 최대목표인양 보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뉴욕 타임스같은 경우는 『노태우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북한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기를 열망하고 있다』고 계속 보도하고 있다.
이같은 보도는 평화통일 전단계로서 신뢰구축을 위해 상호실체를 인정하자는 우리 정부의 주장이 잘못 전달된 것이란 짐작이 간다.
그러나 북한측이 강영훈 총리를 「총리」나 「대표선생」으로 부르는 데 일희일비한다는 보도나 노 대통령이 자신의 국내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뒤따르고 있다. 남한정부가 계속 정통성 인정을 구걸하고 있다는 인상과 아울러 남한에 뭔가 정통성에 흠이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보도가 한국의 국제지위에 손상을 주고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지는 않을 것이나 뭔가 앙금이 남는 마음을 갖게한다.
이런 잘못된 인식들이 보도과정에서 빚어진 오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이번 남북대화를 민족사의 긴 안목에서보다 내치의 연장선에서 파악한 결과라면 불행한 일이다. 혹시 6공이 「정권」의 정통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5공의 정통성 추구정책을 답습한 나머지 「정부의 정통성」과 「정권의 정통성」에 혼란을 가져온 것이라면 큰 문제란 생각이 든다.
남한에 정통성이 있다는 설명에 수긍하면서도,그렇다면 정통성 논쟁은 지금의 반대로 전개되어야 옳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이 굳이 북한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입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유럽특파원의 말이 계속 귓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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