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연 판문점 통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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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남북교류가 통일로 가는 지름길임을 우리는 이번 평양의 남북축구대회와 뉴욕의 남북영화제에서 다시한번 확인했다.
평양의 5ㆍ1경기장을 메운 15만명의 북쪽 관중이나 이른 저녁부터 TV수상기를 지켜본 남쪽의 시청자들에게 있어 90분간의 축구시합은 남북간의 화합을 창출해내는 영원한 감동이었다.
남북영화제에 참석했던 북한측 대표 또한 『막상 만나보니 우리는 한 핏줄임을 확인했다』 『남북한의 영화는 차이점도 많지만 똑같은 조선족 정서를 갖고 있다』고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심판의 PK선언이 석연치 않았다 해서 불만을 품을 계제가 아니다. 15만의 관중들이 단일팀 깃발을 흔들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열창하고 남북 선수들이 서로의 유니폼을 맞바꾸어 입는 광경 속에서 우리는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열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름으로 휴전선을 걷어내고 남북 영화인이 함께 영화를 만들며 다음 영화제는 판문점에서 열자는 합의가 손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도 그것이 문화적 교류이기 때문이다.
판문점에서 벌여왔던 여러 정치회담이 말씨름만으로 일관된 얼마나 지루했던 정치적 곡예였던가. 남북정치회담이 형식적ㆍ수사적인 데 비해 체육ㆍ문화분야의 교류는 즉각적인 민족동질성을 확인하고 민족적 정서의 통합을 이룩하는 직접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
물론 정치ㆍ군사ㆍ경제분야의 여러 회담의 성과가 결국은 통일의 뼈대를 굳힐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정치회담이 순조롭고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그 주변환경을 성숙시켜 줄 체육ㆍ문화ㆍ학술 분야의 교류는 더욱 활기차게 전개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90분간의 남북축구시합이 사흘간의 첫 남북총리회담보다 민족화합과 통합을 위해서는 더 효과적이었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는 통일작업을 위해서 중차대하고 교류의 방식 또한 정치회담보다 용이하다.
남북의 정치적 역학관계가 배제될 수 있고 직접적으로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이는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남북축구대회가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비정치적 교류에서까지 정치적 관계설정과 개입의 흔적은 두드러지게 보였다.
대회개최를 합의하고서는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대회를 무산시킨다거나 대회일자를 굳이 노동당 창당기념일에 맞춰 기념식의 후속 잔치로 벌이려는 정치적 의도는 앞으로는 지양되어야할 교류의 기본 자세다.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가 통일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데는 그것이 남북 정권 담당자들의 정치적 계산이 배제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열린 남북축구대회와 남북영화제,그리고 앞으로 추진될 체육ㆍ예술 분야의 여러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선 남북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민족화합의 정신이 존중되어야 함을 남북 당국자들은 거듭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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