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단안이 필요하다/단식으로는 정국 풀릴 수 없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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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사건과 김대중 총재의 단식으로 정국은 급속히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사회불안은 고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민자당의 대응자세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민간인 사찰문제만 해도 국방위를 열어 국방장관으로부터 「개선약속」과 「사과」를 이끌어내기는 했으나 사태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 명확하고 신속한 대응을 못한 탓에 결과적으로는 여론에 밀려 마지 못해 한꼴이 되어 버렸다.
정국악화의 근본원인인 지자제와 내각제 개헌문제에 대한 대응은 더 한심한 형편이다. 이들 문제로 국회가 표류한지 두달이 되도록 야당의 등원을 유도해내기는커녕 아직도 당론조차 집약하지 못한 채 백가쟁오식 당내 대립과 계파간의 이해다툼만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김대중 총재의 단식에 의한 투쟁방식이나 다른 야권의 장외투쟁방식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투쟁방식은 일시적으로는 그 목소리를 높여주고 입지를 강화시켜 줄지 몰라도 좀더 긴 눈으로 볼때 그것은 국민의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환멸만 심화시켜주고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외적 상황을 한층 더 위국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태전개의 큰 책임은 역시 민자당이 져야 한다고 본다. 국회가 표류한지 두달이 되도록 민자당은 야당의 요구에 대한 아무런 실현성있는 방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등원만을 촉구해왔다.
이는 정치의 정상화를 바라는 여론의 힘을 빌어 저절로 매듭이 풀어질 것을 기대하는 안이하고 무책임한 자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자제와 내각책임제가 정국표류의 근본원인이라면 야당의 생각이 어떠하든간에 우선 자신의 합의된 입장과 견해를 밝히는 것이 정치의 수순이자 정도가 아니겠는가.
그저 「국회가 더이상 표류해선 안된다」 「정국이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무해무득한 말로 야당의 등원만을 촉구하는 데 그치는 것은 그 정치적 무능과 무책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밖에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의 근본적인 원인이 민자당 안에 구심점과 지도력의 없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민자당의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정당이 정당으로서의 모습은 갖추었나 싶게 어떤 명확한 정책구상은커녕 기강도,위계질서도 없고 집권정당으로서의 진지성도 결여된 채 사분오열되어 우왕좌왕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도부는 지도부대로 사사건건 앙앙불락이고 아래는 위를 비난하며 각 계파끼리는 또 그들대로 다투고 있으니 당론이 집약될 리가 만무하다. 10일의 의원총회에서도 그것은 여실히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민자당의 총재이기도 한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스스로 구심점이 되어 갈래갈래로 찢긴 당론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민자당의 내부사정으로 볼 때 대통령이 아니고서는 지도력을 지닐 수 없게 되어 있다. 대통령이 민자당의 총재로서 지자제와 내각제 등 정치현안에 대해서 이거든 저거든 하루빨리 단안을 내려야 한다. 산적한 국내외적 중대과제들로 볼 때도 정국이 더이상 이대로 방치되어선 안된다. 무책이 결코 상책은 아니며 벼랑에 몰려서는 이미 때가 늦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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