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리정책은 한은에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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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제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를 방문했다. 통화정책이나 금융정책과 아무런 관련 없는 인물이 한은총재를 일부러 찾아간 것도 괴이하거니와 중앙은행 총재가 청와대의 비서관을 집무실에서 만나준 것도 선뜻 납득이 가질 않는다. 당사자들은 사적인 용무라면서 금리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두 사람의 직위와 만난 시점이 공교롭기 짝이 없다. 비서관은 그동안 청와대가 주도해온 부동산 정책의 실무 주역이다. 마침 정부는 국정브리핑을 통해 부동산값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시사한 터다. 누가 봐도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청와대가 한은에 금리 인상을 요구하러 간 모양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장 채권시장이 요동을 쳤다. 시장은 이 만남을 금리 인상의 신호로 해석한 것이다.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은총재와 청와대 부동산정책 비서관의 만남은 부적절했다. 만일 시장에 알려진 대로 부동산값 안정을 위해 금리정책을 동원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금리정책은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다. 다만 그것은 정부나 청와대.정치권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앙은행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한은은 박승 전 총재 시절 금리 조정의 타이밍을 여러 차례 놓쳤다. 그렇게 된 데는 정부의 입김이 적지 않았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이성태 총재 취임 이후 한은의 통화정책은 비교적 독립적으로 운용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금리정책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이 다시금 횡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부동산 대책으로 거론되는 금리 인상 주장은 그동안 부동산 정책의 실패 원인을 저금리 탓으로 돌리려는 불온한 기운마저 엿보인다.

한은이 금리 조정과 관련된 오해를 불식시키고, 독립성을 지키려면 외부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오늘 금통위의 결정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