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조화로 남은 소녀(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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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하느님 해도 너무 하십니다. 내게 무슨 죄가 그리 많기에 이다지도 심한 날벼락을 내리십니까.』
5일오전 청주병원 영안실.
학교옆 자취방에서 잠자다 폭행하려는 괴한에게 반항하여 가슴을 찔려 17세나이로 숨진 송영미양(청주 D여상2년)의 아버지 송강호씨(49)의 비통한 절규만이 가득하다.
학급실장을 맡아 반의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온 송양은 중학교 때부터 줄곧 우등을 지켜온 모범생.
송양은 그나이 또래의 다른 소녀들이 갖기 쉬운 보랏빛 꿈도 접어둔채 오직 은행원이 되어 주위사람들을 도와 주겠다는 소박한 삶을 살아온 맑은 소녀였다.
『영미는 평소 내성적인데다 착하고 항상 웃음을 띠고있어 천사라는 별명으로 더 잘 불렸어요. 이처럼 좋은 친구를 앗아가는 이 사회가 원망스러워요.』
영미양의 책상에 국화 한송이를 올려놓고 둘러서서 오열하는 등급생들의 몸부림에서 비정하게만 치닫는 세태를 극명하게 읽을수 있었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2남2녀중 막내딸로 청주에서 공부해온 송양이 친구와 함께 자취방에서 웃음을 잃은 것은 추석연휴가 끝난 4일밤 늦은 시각.
이들의 꿈자리를 덮친 20대괴한은 반항하는 소녀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7세 소녀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험해졌기로서니 피어나지도 못한채 사라져야 하는 이 땅의 소녀들은 누가 보호해야 한단말입니까.』
송양 담임 김용식선생님(29)의 부르짖음만 찌푸린 가을하늘가를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청주=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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