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ㆍ위신버리고 동맹국을 배신”/로동신문 한소수교 비난논설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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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두개의 조선 인정 통일 역행/초대국 소가 남조선에 구걸 손짓
【서울=내외】 북한은 5일 한소간에 역사적인 국교수립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강한 분노감을 표시하면서 격렬히 비난하고 나섰다.
북한은 한소 수교 5일째 되는 이날 「달러로 팔고 사는 외교관계」라는 제하의 로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소련은 조선을 38선으로 분열시킨 책임이 있는 나라』라고 전제,『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조선에 두개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조선의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로동신문 논평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번에 소련이 자기입장을 180도 전환하여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한 것은 추문과 오점으로 얼룩진 사건이다.
지난 9월초 평양에서 있은 조소 외교부장 회담때 소련측은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키로 결정하게 된 불가피한 사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금의 소련은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국가,새로운 사회로 되었다는 것을 애써 강조했다.
지금의 소련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를 견지하던 전날의 소련이 아니고 그 어떤 다른 성격의 국가로 변질된 것만큼 그에 상응하게 새로운 벗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ㆍ민족,심지어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도 주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소련의 최고위 당국자 자신이 소련은 남조선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오늘에 와서 소련이 이 엄연한 공약들을 다 휴지통에 집어 던지고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기로 했으니 이것을 배신이란 말 이외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소련으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38선으로 분열시킨데 책임이 있는 나라이며 동시에 조선을 맨 선참으로 조선민족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나라다. 소련이 이제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현실인정의 구실을 붙이건 말건 결국은 조선에 두개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자기들의 공약을 완전히 뒤집어 엎고 조선의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행동을 하는 것으로 된다.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면 주관적 의도야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는 두개 조선으로 분열을 고착시키고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며 소위 개방에로 유도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제도를 뒤집어 엎으려는 미국의 기본전략에 공공연히 가담하는 것으로 밖에 달리 될 수 없다.
우리는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게 되면 조선의 통일위업에 근본적으로 역행하게 되고 우리 인민들에게 민족분열의 고통과 불행을 가중시키게 되며 조선반도에서 세력균형을 허물고 북남대결과 군비경쟁을 격화시키게 되며 정세를 극도로 첨예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한두번만 경고하지 않았다.
세계의 초대국으로 자처하던 소련이 개편정책 5년에 어떻게 했으면 나라를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해놓고 남조선에 구걸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가. 보도에 의하면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때를 같이 해 남조선이 소련에 경제협력 자금으로 23억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소련은 사회주의대국으로서의 존엄과 체면,동맹국의 이익과 신의를 23억달러에 팔아먹은 것이다.
현시기 세계 정세는 참으로 복잡하고 첨예하다. 초대국들사이에 화해가 국제정세의 완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하지만 일부 지역들에서는 도리어 정세를 뒤흔들어 놓고 악화시키고 있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해 열강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합집산과 공모결탁이 의연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은 세계가 대국들의 의사에 따라서만 좌지우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 시대는 자주성의 시대다. 우리는 아무리 우여곡절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부닥치는 암초를 외돌면서 자기가 갈 길을 끝까지 갈 것이다. 역사는 배신과 변절,부정과 전횡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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