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판 지역감정」해소돼야 진정한 통일/“세월이 약”…새독일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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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ㆍ서쪽 주민들 위화감ㆍ이질성 “발등의 불”/첫 의회서도 최우선 과제로 극복노력 강조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독일국민과 신정부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 가운데 동쪽과 서쪽주민간의 위화감 해소작업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통일이라는 외형적 완성에 걸맞게 심리적 동질화라는 내면적 완성이 시급한 것이다.
4일 베를린의 구 제국의회(라이히스타크) 의사당에서 열린 개원회의에서도 여야 모든 지도자들이 동서 주민간의 이질화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희생과 연대를 강조했다.
통일독일의 초대총리로서 통일정부의 출범을 공식 선포한 콜총리는 『신정부가 해야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모든 분야에서의 내부적인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내년도 시정목표는 경제ㆍ문화ㆍ사회적 일체화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야당인 사민당의 브란트 명예총재는 『이제는 정부와 야당이 협력할 때』라고 말했으며 라퐁텐 사민당 총리 후보도 『동쪽주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서쪽주민과 동등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람스도르프 자민당총재는 『이제는 서쪽주민들이 동쪽주민들에게 접근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들 정치지도자들의 주장처럼 동쪽주민과 서쪽주민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의외로 심각한 수준이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가치관,그리고 사회체제에서 40년 이상을 살아온 결과다.
독일사람들은 구 동독지역 주민들을 「오시스」,구서독 지역주민들을 「베시스」라는 속어로 곧잘 부르는데 이말에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멸시의 감정이 깔려 있다.
서쪽 사람들이 오시스라는 표현을 쓸 때는 「시골뜨기ㆍ무지렁이」등 멸시의 감정이 깔려 있고 동쪽사람들이 베시스라할 때는 「돈좀있다고 오만한 졸부」쯤의 감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는 「알디」라는 슈퍼마킷이 있다.
비교적 값싼 생필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연금생활자나 저소득층이 애용해 왔으나 최근에는 오시스들의 단골가게가 됐다.
이 슈퍼마킷 부근에는 으레 구 동독의 볼품없는 승용차인 트라비가 빽빽히 주차해 있고 가게 입구에는 사회주의권의 대명사인 긴행렬이 늘어서 있는 데 이를 쳐다보는 베시스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 없다.
또 같은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동쪽 주민들의 표정엔 아직 그늘이 져있고 옷차림이나 행색이 초라해 서쪽주민과 쉽게 구분된다.
또한 벤츠나 BMW등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베시스들은 앞에 값싼 동독제 트라비 승용차를 몰고가는 오시스들에게 비키라는 신호로 라이트를 켜대거나 경적을 울려대기 일쑤다.
그러나 오시스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천천히 운전하고 성미급한 베시스들이 굉음을 내며 이들을 추월해 가면서 손가락질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독일언론과 많은 지식인들은 이와 같은 독일판 지역감정을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이질감을 극복하기까지는 적어도 5년에서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간 TV 상호개방과 인적교류의 허용등 동질화 작업을 진행해온 독일국민들에게서도 이 문제가 이처럼 심각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나 국민이 지금부터 해야할 숙제들은 참으로 많다는 느낌이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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