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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논쟁' 필요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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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군사기지 유치가 제주도에 결정적인 형질 변경을 가져오고 결국 주민 삶에 심대한 변형을 초래하기에 논쟁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논쟁은 주민의 의지를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에 따라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그 권한을 위임받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주권자가 위임하지 않은 사항을 임의대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에 잠정 유보됐던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계획이 재수립됐다고 보도된 것은 2005년 3월이다. 그러니까 오늘 시점에서 보더라도 해군기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겨우 1년7개월 정도다. 그동안 우리에게 제공된 정보란 해군기지의 전략적 목적과 기지 건설에 투하되고 향후 소비가 예측되는 경제적 효과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것이 전부였다.

독일 베를린에는 유대인 대량학살을 기억하기 위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그들은 이 기념관을 어떻게 건립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1988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치열한 논쟁을 거듭해 왔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성당 인근에도 유대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순교자의 묘가 있다. 이 기념시설도 설계를 하는 데만 무려 10년에 걸친 연구와 준비 과정이 소요됐다. 완공됐다가도 금방 헐어버릴 수 있는 하나의 건축물을 위해서도 이토록 엄청난 공력을 들이는 법이다.

이처럼 각국은 오랜 논쟁을 통해 주민 의사를 하나로 결집하는데 우리는 기이하게도 아직까지 이 문제를 판단하고 가부를 선택할 만큼 제대로 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박하게 생각한다 해도 해군기지 유치는 얼마나 다종다양한 영향을 미치겠는가. 큰 틀에서 보더라도 전략.군사적 가치의 실효성 유무를 비롯해 경제적 효과의 진위, 사회적인 폐해 정도, 문화 왜곡의 여파 정도, 환경 파괴에 따른 지질.수질오염의 정도, 이로 인한 일상의 격변 등 메스를 들이대야 할 영역이 한둘이 아니다. 이 모든 변수의 의미를 염두에 둔 종합적인 판단이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능한 한 모든 경우의 사례 조사이며 이에 대한 당국자들의 진솔한 책무의식이다. 화순항 기지를 둘러싸고 '갈등'이 시작됐는지는 모르나 '논란'을 벌일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규배 탐라대 교수 제주4·3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