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경제 70년 마감 자본주의“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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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 최고회의 시장경제 이해결정의 의미/고르비 비상대권으로 입지 강화/단일안 요구는 보수파 고려한 듯/대통령 역할ㆍ중재 여부 따라 개혁속도와 방향 가름
소련 최고회의가 24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경제입법 비상대권을 허용하는 한편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고르바초프 단일안을 10월15일까지 다시 제출토록 한 것은 장래 소련 시장경제정책의 방향을 예견하는 의미 심장한 전환이다.
최고회의의 이번 결정은 70년에 걸친 계획경제를 폐기하고 소련에 시장경제가 5백일 이내에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을 원칙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개혁파(샤탈린안)의 승리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이의 실행을 10월15일 이후로 미루었다는 점에서 보수파(리슈코프안)의 입지도 고려했다고 할 수 있다.
샤탈린안에 따르면 시장경제로의 이행정책은 10월1일부터 즉각적으로 실행하도록 되어 있고 급진파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포포프ㆍ소브차크시장이 이끄는 모스크바ㆍ레닌그라드시 의회는 최고회의에서 샤탈린안의 채택 여부에 상관없이 오는 10월1일부터 샤탈린안을 실시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었다.
또한 리슈코프 총리를 비롯한 아발킨 경제개혁위원회 의장등은 샤탈린안이 채택될 경우 내각은 총사퇴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해 왔었다.
따라서 만약 이번에 최고회의가 리슈코프안이나 샤탈린안중 어느 하나를 선택했다면 소련은 내각의 총사퇴라는 전대미문의 혼란과 조정자로서의 대통령의 권력입지 약화를 초래했거나 그 반대로 보수파 군부등 국가기간 조직을 이루던 기득권층의 반발을 초래했을 것이다.
따라서 최고회의가 24일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5백일 이내에 해야한다는 점과 ▲최고회의에 제출된 세가지안을 다시 검토해 10월15일까지 단일안을 제출하라는 점 ▲향후 경제개혁 등을 추진하는데 따른 추진력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주었다는 점은 현실의 정치ㆍ경제를 고려한 타협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회의의 이번 결정이 얼마나 큰 구속력을 가질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우선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한데 대해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비상대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공화국과 연방정부가 충돌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10월15일까지 러시아공화국ㆍ모스크바ㆍ레닌그라드시가 자신들이 이미 공언한 샤탈린안의 실행을 미룰지의 여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만약 이들이 예정대로 10월1일부터 샤탈린안을 즉각적으로 실시한다면 연방 최고회의와 고르바초프,그리고 리슈코프의 권위는 실추될 것이고 소련 정국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또 만약 급진파가 10월15일까지 다시 한번 기다려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단일안이 최고회의를 통과한 후에 개혁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이는 연방의 정책적 붕괴를 막은 고르바초프의 승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는 이번 최고회의의 결정에 따라 입지가 대폭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일단 급진파 및 주권선언을 한 공화국들에 연방에서 단일안을 만들어낼 때(10월15일)까지 참아서라는 설득과 함께 자신이 확보한 비상대권을 활용해 각 공화국에 경제조정을 위한 긴급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소련 경제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고르바초프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중재자로의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오는 10월15일 최고회의에 제출될 「단일안」이 어떤 방식으로 급진파와 보수파를 만족시켜 이미 기다리기에 지친 소련인민에 숨통을 터주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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