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게 된 「남북한 축구교류」/김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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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때 국민을 들뜨게 했던 남북축구교류 경기가 없었던 일로 되는 모양이다. 우리정부 당국자가 성급하게 발설,매스컴에 「10월14일 경평전 평양개최」로 보도된 축구교류에 대해 북한이 22일 평양방송을 통해 『아는 바 없다』고 딱 잡아땠기 때문이다. 이어 북한은 23일 남북체육장관의 북경회담에서는 거론조차 하기를 거부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1주일후쯤 남북축구경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북한이 피력해 왔다는 우리 당국자의 전언과 이를 과장에 가깝게 보도한 우리 언론의 태도는 좀 우습게 되고 말았다.
물론 우리 당국자도 할 말은 있다. 북한측 관계자가 북경다이너스티컵 경기때를 비롯,몇번의 접촉에서 우리측에 축구 교환경기를 분명히 제의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최근 체육분야에서의 지나친 개방이 그들에게 불리하다는 내부 분석이 나오고 남한측의 적극적 호응에 부담을 느껴 들여놓은 발을 갑자기 빼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판문점과 해외에서 있었던 남북체육관계자 접촉이나 지금 북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북한의 묘한 행태를 보면 우리 당국자의 해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바도 아니다. 북측은 23일 북경체육장관 회담에서도 김유순위원장이 20분간 의도적(?)으로 지각했고 기자회견중 먼저 자리를 뜨는 결례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북이 아무리 그렇다쳐도 이번 우리 정부와 언론의 태도에는 적지않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정부는 열매가 채 여물기도 전에 성급히 공개했고 언론은 이를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과장도 곁들여졌다.
어떡해서든지 구실을 잡아 교류를 회피하려는 북의 속성을 알고 있으면서 미처 성숙되지 않은 협의 내용을 공개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에 속한다.
또 일이 얼마나 두서없이 진행됐던지 남북대화 주무부서인 통일원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통일원관계자들은 신문보도를 보고 정보당국ㆍ체육부등에 문의했으나 『우리도 모르는 일』이란 답변만을 들었다.
결국 이번 소동은 부끄러운 흔적과 함께 남북대화의 변하지 않는 교훈을 확인시켜 주었다. 백번의 대북제의보다 북의 결심이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북한을 신중하게 상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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