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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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출발 한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표를 끊을 때 비행기 회사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막 수속을 끝낼 때쯤 공항의 TV 모니터에 「연발」 표시가 나왔다. 한 시간 늦는다는 것이다.
그런가 보다 하고 기다렸더니 이번엔 출발예고 표시판에 3시간 늦어진다는 등불이 켜졌다. 난감했다. 공항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기엔 너무 지루한 시간이고,그렇다고 집으로 되돌아가기에도 그런 시간이었다.
어쨌든 3시간 뒤 공항에 다시 나간 승객들은 그 비행기편이 아예 취소되었다는 표시판을 바라보아야 했다. 답답한 노릇은 그런 사정을 누구 하나 앞에 나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말이다.
한쪽에서 수군 수군하는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였더니 갈곳 없는 승객은 서울 변두리의 어느 호텔에서 하룻밤을 재워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대놓고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마치 무슨 큰 비밀이나 가르쳐주듯이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였다.
호텔로 가는 버스편 역시 막연했다. 용케 그것을 알아낸 승객들만이 간신히 이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호텔에선 저녁식사를 주는데,빵 한조각과 고기 한점이 전부였다. 추가메뉴는 각자 부담으로 따로 시켜야 했다. 아침식사도 마찬가지였다. 야채 한접시 시킬 수가 없었다.
비행기는 천만다행으로 이튿날 새벽 서울을 탈출이라도 하듯이 떠나긴 떠났다. 이것은 최근에 시애틀행 미국 비행기에서 직접 경험한 일이다.
비행기표를 살 때면 항공사에서 으례 묻는 말이 있다. 연락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준다는 암묵의 약속이다. 그러나 승객들은 공항에서 머쓱히 처분만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물론 그 많은 승객에게 일일이 전화걸기가 어려운 사정은 안다. 그렇다면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라도 부탁해 전화 통고를 했어야 옳다.
오늘의 미국경제가 왜 안되는지,왜 일본한테 뒤지는지는 이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승객이 불쾌한 것은 비행기의 결항이 아니다. 서비스업을 하는 회사의 서비스 부재와 고객의 인격모독 행위다.
요즘 미국 여객기들의 결항이 잦다는 신문보도를 보며 새삼 불쾌한 생각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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