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트럭(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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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장의 사진이 신선한 감동을 안겨준다. 만남의 광장에서 전남지사와 서울시장이 밝은 미소를 담은 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뒤엔 서울ㆍ경기지방의 수재민을 위해 보내는 보은 성품을 가득 실은 40여대의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다.
중부 수재민에게 보내는 전남도 지원단의 정성어린 보은트럭 대열이다. 『이번엔 우리가 도와야 할 차례』라면서 시민들 스스로가 발벗고 나섰다. 지난해 영산강 범람으로 전 시가지가 물에 잠겼던 나주ㆍ장성 주민들이 앞장을 섰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고 고난을 겪어 본 사람이 그 어려움을 더 잘 알기 때문이며 지난해 받은 온정에 대한 보은의 답례라고 생각했다.
쌀이나 옷가지보다는 부식해결이 큰 문제였다고 김치보내기 운동을 폈다. 집을 잃었던 수재민은 돈이 먼저 필요하다고 모금운동을 폈다.
영강국민학교 어린이들은 어린이회를 열어 자신들이 겪은 수재와 그를 극복했던 경험과 의지를 담은 위문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노소가 따로 없다고 할머니들까지 나섰다.
이렇듯 모여진 호남지역의 성금과 성품이 40여대의 트럭에 차곡차곡 실려 서울과 경기지역으로 옮겨지고 있다. 오가는 정 속에서 다져지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새삼 지켜보는 감동어린 광경이다.
공동체의식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두레정신이다. 농경사회의 하부구조를 이뤘던 우리 고유의 공동체조직이다. 함께 일하고 도우며 함께 논다는 것이 두레정신이다.
「두레」는 「두르다」의 고어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신용하교수는 풀이한다. 「두르다」는 모두,골고루,빠짐없이의 뜻을 포함한다. 나 하나만을,이 내 가족만을 위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산업사회 속에서 함께 골고루 서로 도우며 살자는 두레정신이 더 없이 소중한 때다.
바로 이런 때에 호남주민들이 보여준 두레정신의 재현,보은트럭의 대열은 이기주의로 가득차 있는 「서울사람들」에게 내집만이 아니라 이웃도,혼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생각케 하는 전기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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