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총리」아닌 「선생」인가/김두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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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일 오전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1차회의는 쌍방총리가 호칭을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강영훈총리가 북한의 연형묵총리를 깎듯이 「총리」로 호칭한데 비해 연총리는 강총리를 계속 「강선생」또는 「수석대표선생」으로 불러 분위기를 어색하게 했다.
연총리는 기조연설을 시작하기 전 인사말에서 한차례 「강총리」라고 하더니 기조연설에 들어가면서 또 「강수석대표선생」이었다.
이렇게 되자 강총리도 부아가 났던지 1차회의를 끝낼 무렵에는 『「연선생」도 내일은 좋은 안을 내놓으시지요』라고 연총리를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연총리는 판문점을 넘어올 때부터 영접나온 홍성철 통일원장관을 「홍선생」이라고 불렀고 숙소에 도착해서 강총리와 환담하면서도 「강선생」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연총리뿐이 아니다. 북측대표들은 우리 정부대표는 누구든간에 「선생」이었다.
아마 판문점을 넘으면서부터 호칭은 「선생」으로 한다고 작정한 것 같다.
그동안 수십차례의 남북대좌에서도 북측대표들은 「채문식 수석대표」(국회회담 예비회담) 「송한호 수석대표」(고위급회담 준비접촉)등에게 모두 「선생」이란 호칭을 사용해 왔다.
남한당국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공식직함을 부를 수가 없다는 것인 듯하다.
지금까지 1민족 2국가를 반대해온 만큼 「총리」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남한체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총리가 『통일은 절대로 어느 일방에 의한 통일로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고 연방제 통일안을 주장하면서 남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이 소련등의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회담에 응했다고는 하지만 회담에 나온 이상 회담의 주체가 누군지,초청자가 누군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북한이 우리정부의 고위당국자와 회담하면서 당국이나 정부라는 표현은 물론 「총리」라는 호칭까지 기피하는 것은 떳떳하지가 못한 것 같다.
남북대화에서 보다 진전된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북한측이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현실적인 감각을 가지고 남북문제에 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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