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회 소동」이 보인 속물세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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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일 오후 2개 서울 강남지역 백화점에서 벌어진 대소동은 우리 사회의 속물근성ㆍ탐욕ㆍ천민적 상업주의ㆍ행정의 무신경ㆍ공영방송의 무책임성 등등 그야말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온갖 추잡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백화점식으로 망라해 보여준 사건이었다.
수량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인기연예인들이 쓰던 헌 옷가지와 물건을 마냥 살 수 있는 양 무책임하게 방송한 KBS도 문제이나 우선 그를 듣고 허겁지겁 몰려든 시민들은 자신들의 들뜬 욕망과 호기심 과잉의 속물근성부터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창피스러워 하기는커녕 5시간이나 점거농성을 벌인 끝에 3만원씩을 받고서야 자리를 떴으니 더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그날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특수한 경우라고만 할 수 있을 것인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사회의 의식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천박한 욕망과 호기심이 적나라하게 투영된 세태의 한 단면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백화점측의 당장 이익만 노린 얄팍한 상술도 얄밉기 짝이 없다.
백화점이야 손님을 가능한 한 많이 모으려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뻗댈는지 모르나 명색이 일류 백화점이라면 물건을 팔되 그 나름의 품위와 신용,고객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또 그래야 장기적으로는 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게 아닌가. 그저 무슨 수단으로든지 손님만 끌어들이면 그만이라면 거리의 영세상인과 무엇이 다를 게 있는가.
백화점이 「무의탁 노인 돕기 바자」를 유치한 것도 속이 들여다보이는 짓이다.
노인들이 만든 고추장ㆍ된장 등이 손님을 끌리라고는 백화점측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한낱 명분이고 연예인들 헌 옷가지 찬조출품에 유혹을 느꼈음에 틀림이 없다.
이를 주최하고 장시간 생중계까지 한 KBS는 너무도 한심하다 할 것이고 마땅히 소동의 주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명색이 공영방송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고 돈이 남아 도는가.
좋은 뜻에서 무의탁 노인 돕기 바자를 하려면 방송국 스튜디오를 이용한다든지,전화로 주문을 받는다든지 소동을 일으키지 않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특정 백화점의 개점기념일에 그 백화점에서 연예인 바자를 주최한다는 건 공영방송의 자세나 책임문제이전에 의혹을 산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아닌가.
앞으로는 시나 교통당국도 이런 성격의 행사는 사전에 규제해야 한다. 백화점의 연예인 바자때 행사장 주변의 교통이 마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도 무신경하게 행사를 방치해 일대의 교통을 6시간이나 마비시킨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일요일마다 이 일대가 심한 교통체증을 빚는 판에 거창한 행사까지 벌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서 되겠는가.
이말 저말 할 것 없이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모두가 제 이익과 권리를 챙기기에만 급급하지 제 분수는 모르고 더더구나 남의 이익이나 자신의 책무는 까맣게 잊은 채 돌아가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운 세태다. 모두가 이번 일을 남의 일이 아니라 제 일로 여겨 차분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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