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안잰 공휴일 축소결정(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공휴일의 축소에 관한 정부부처간의 혼선과 노동계의 반발을 보면서 우리는 새삼 정부의 졸속하고 사려분별없는 일처리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ㆍ사회적 상황이 어떻든간에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결정을 내리려면 마땅히 정부는 사전에 충분한 의견절충 과정을 마련해야 하고 그 끝에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린다면 나름대로의 명확한 논리가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결정은 전체 국민은 물론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근로자측과도 충분한 의견절충을 하지 않은 채 내려졌다. 뿐만 아니라 국무회의가 「국군의 날」과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직후에 나온 노동부의 지침내용과 뒤늦게 나온 총무처및 법제처의 해석은 서로 엇갈렸다.
정부 자체내에도 의견일치나 일관성 있는 논리가 결여되어 있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공휴일 축소가 옳다,그르다를 논하기 이전에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사회적 마찰과 반발이 없기를 바라겠는가.
정부로서는 노동계의 반대의견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의견절충을 더해 보았자 노동계가 받아들일 성질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안을 내릴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동계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이 실제로 무슨 효과를 거둘 것인가.
법정공휴일의 축소결정이 단순히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법정공휴일이 많다든가 10월에 너무 몰려 있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 아니라 그 궁극적인 목적이 노동시간을 늘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노동계로부터 납득을 얻어내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일 것이다. 여론의 힘을 빌리든 어떻든 그래야 의도대로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득과정 없이 공휴일만 축소하면 생산성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너무도 안이한 발상이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좀더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이 있어야 했지만 이미 10월을 눈앞에 두고 졸속하고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지금 해결책은 국가적 필요성과 노동계의 이해를 어떻게 적절히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군의 날과 한글날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한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법정공휴일이 많은 편이고 더구나 10월에 그것이 몰려 있어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들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휴식시간의 일방적인 축소를 가져온다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우리의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발전 단계에 비추어 아직도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때라는 지적 자체는 옳으나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주휴를 포함한 연간 휴일이 선진국은 1백일이 훨씬 넘고 우리의 경쟁국들도 대부분 우리보다 많다.
따라서 일을 적게 한다는 주장자체는 설득력이 없다. 문제는 근로의욕을 어떻게 높여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을 뿐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불안과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법정공휴일을 줄이는 대신 각 기업이 형편에 따라 근로자 개인별로 유급휴일을 그만큼 늘림으로써 공휴일의 축소로 인해 현재의 휴식기간이 줄어드는 일은 없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노동계도 그런 방향에서의 해결책을 찾아주기를 당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