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편지… 임진각농성… (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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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50년 12월15일 함경남도 부둣가에서 당신이 저와 세아이를 미군의 피난수송선에 태워놓고 부모님을 모시러 간사이 배는 그대로 떠나버렸습니다. 그것이 40년 이별이 됐지요. 홀로 세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동안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때 배에서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도 다 훌륭히 컸어요. 편지로나마 불러보는 당신,어떻게 살고계신지 소식한장 전하지 못하는 마음 찢어질 것같습니다.』
피난올때 23세던 장금옥씨(63ㆍ서울 낙원동)는 어느새 환갑을 넘긴 할머니가 돼버렸고 장씨가 절절한 사연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숨죽인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13일 오전11시 실향민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북5도 민중앙연합회(대표의장 윤관) 주최 「이산가족재회촉구대회」가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참석자는 대부분 백발성성한 노인들.
한맺힌 사연들이 소개될 때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허공을 쳐다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내기에 바빴다.
모두 구구절절 가슴 저미는 사연들이었다.
오후2시 행사를 마친 참석자중 7백여명은 임진각 망배단에서 황해도ㆍ평안도 등 고향이름이 씌어진 「망향우체통」 7개의 개통식을 갖고 가져온 4천여통의 편지를 넣었다. 『내 이 속죄하는 편지가 죽기전에,아니 죽어서라도 꼭 전해져얀 하는데….』
부인과 어린남매를 두고 혼자 내려와 자신은 죄인이라며 우체통만 어루만지던 한 할아버지(71)는 끝내 말을 맺지 못했다.
실향민들이 망향우체통 개통행사를 가진 13일은 남북민족대교류기간(13∼17일)중 첫날.
오전10시에 임진각을 찾아온 서총련대학생 10여명은 모두 연행됐고,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신부ㆍ범민족대회추진본부대표 등은 농성을 하다 되돌아갔다. 『왜 너희 남쪽사람들은 통일이란 대명제를 놓고도 정부의 대응방식이나 각자의 입장이 제각각이냐』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기자는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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