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빛(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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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광복 45주년을 맞으며 아직도 빛을 못본 세가지가 있다. 우리는 해방과 더불어 그 빛을 찾게 되었다고 모두들 춤추고,깃발을 흔들며,환호했었다. 그러나 우리 앞엔 여전히 어두운 현실뿐이다. 그동안 세월은 지날 만큼 지났다. 반세기에서 다섯해가 모자란 연수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빛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첫째의 빛은 민족통일이다. 동서의 장벽이 무너지고,이념의 얼음장이 녹고,세계는 새로운 진운을 구가하는데 한반도만은 예외다. 사람들은 모두들 통일,통일 하면서 울분과 통한만 쏟고 있다. 그렇게 통일이 되었으면 벌써 되고도 남았다. 우리의 통일은 가슴으로 하는 감상의 산물이 아니다.
마치 고장난 시계를 고치듯,어려운 방정식을 풀듯 우리의 남북통일은 정교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수고와 성의도 없이 통일을 입씨름의 도구로 삼는다면 이제 백년이 지나도 우리의 단절은 극복할 수 없다.
둘째의 빛은 민주주의다. 우리의 수많은 정치인들은 마치 선언을 하기 위해,제도를 뒤집기 위해,성명서 작문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의 수많은 선언과 제도개혁과,화려한 성명서들은 오늘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실망과 배신뿐이다.
광복 45년이 지난 오늘,우리 주위의 어디에 대화다운 대화가 있으며,또 어디에 양보와 타협이 있으며,어느곳에 페어플레이의 경쟁과 승복이 있는가. 세련된 정치기술은 또 어디에 있는가. 광복 45주년에 우리는 무엇을 기뻐해야 할지 모른다.
셋째의 빛은 민생이다. 사람들은 이제 먹고 사는 걱정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은 돼지가 아니다. 사람이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경제는 그런 삶을 위해 더 높이,더 넓게,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품위있는 삶,그런 삶을 보장해주는 민주주의,그것을 지탱하는 힘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그런 노력과 궁리와 실천을 생각하고 있는 공직자와 국민은 몇이나 되는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새로운 광복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광복이 없는 한 지난날의 광복은 아무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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