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따분함 떨치고 돈도 벌고…|주부 「소자본 점포」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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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침 일찍 남편과 아이들이 직장과 학교로 떠나간 후 온종일 혼자 견디기 힘들어 에어로빅과 수영을 1년여 동안 다녔어요. 그러나 점차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돈 쓸 궁리만 하는 「나는 뭔가」하는 회의가 들더군요』. 그래서 수영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87년께 증권 투자 클럽을 만들어 한때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는 주부 김옥현씨 (46·서울 반포동)는 이제 국수 체인점의 어엿한 사장이 됐다.
여성 단체에서 하는 소규모 경영자 교실에서 2개월간 경영 수업을 쌓아 5천만원을 들여 체인점을 연 김씨는 이제 월2백50만원 정도를 벌어 남편의 수입을 능가하고 있다.
김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남편과 아이들이 불평하기도 하지만 아내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달라진 것 같다』며 활기에 차 있다.
『무엇인가 일거리를 찾기 위해 신문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다』는 주부 유영희씨 (44·서울 후암동)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 동창 모임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여유 있게 살면서 쇼핑 등을 하는 친구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일을 하고 경제적인 기여도 할 수 있는가가 화제의 주된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이는 여성의 자아의식 고취와 함께 여성에게도 헌신적인 모성애보다 지위와 돈이 곧 힘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데다 남편과 자녀들이 가사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 가정에의 기여로 생각하지 않는데 대한 여성들의 자각 등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돈을 벌고 싶다』 『일을 갖고 싶다』는 주부들의 욕구는 해마다 늘어 경제기획원이 89년에 발표한 사회 지표에 의하면 88년 여성 취업 인구의 75.6%가 기혼 여성으로 나타나 있을 정도이다.
86년 가을 이후 증권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특별한 여유 자금이나 기술·직장이 없어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여성들이 증권가로 몰려 87년에는 여성 증권 투자 클럽이 붐을 이뤄 전국에 2백30개나 생겨났었다.
이를 기점으로 재산 증식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해 올 7월 조사 전문 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의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 1천2백명의 주부 중 4분의 1이 현재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 증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88∼89년 부동산 투기에도 나타나 89년 국세청이 부동산 투기 혐의자 중 추징 세액이 5천만원이 넘는 1백23명의 명단을 공개했을 때 가장 많은 직업이 무직으로 나타난 주부여서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식 시장과 부동산 열기가 식어지면서 투자 가치로써 미술품에 투자하는 주부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5천만∼1억원 정도의 여유 자금이 생기면서 홈 패션점, 닭고기 체인점, 국수 체인점 등 소규모의 사업을 경영하겠다는 여성들이 부쩍 늘어 88년 이후 한국여성개발원, 서울 YWCA, 여성신문교육문화원,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기타 문화 센터들이 이들을 위해 「여성소자본 경영 교실」 등을 다투어 개설하고 있다.
특히 여성 사업으로 각광받는 유아용품점, 홈패션점 등은 90%이상이 여성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관련업계 측의 얘기.
한국여성개발원 하필연 책임 연구원 (교육 연수실)은 『배운 것을 활용해 자아 실현을 하고 싶다며 집에 있는 것을 크게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주부들이 많아 앞으로 여성 경영자 세미나·여성 사업 교실 등을 계속 개최, 주부들의 요구에 부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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