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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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가 어둡다는 말만큼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경제가 쭈그러들면 세상만사가 쭈그러든다. 사회는 활기를 잃고 사람들은 마음이 불안해 일손이 무디어진다.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징조는 지금 경제구조의 변화에서 읽을 수 있다. 서비스업,그러니까 손에 기름때 묻히지 않는 일들의 비중이 자꾸만 커져간다. 2차산업으로 불리는 제조업은 거꾸로 즐어들고 있다.
흔히 서비스업이 늘어가는 것은 선진국형 산업구조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선진국형」이라고 뭐든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선진국은 이미 몇십년,몇백년을 두고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위에서 사회적인 축적을 많이 하고 있는 나라다.
선진국치고 넥타이 매고 앉아서 하루 아침에 된 나라는 없다. 시커먼 연기속에서 작업복 입고 고생,고생한 나라들이 선진국이 되었다. 남다른 첨단기술과 기초산업과 국민들의 근면,성실이 밑받침이 된 것이다.
지난 88년 홍콩의 한 신문이 우리나라를 빈정대던 말이 생각난다. 신만보라는 중국계 신문은 『이대로 가면』이라는 단서를 붙여 한국은 용에서 벌레로 변할 것이라고 했었다.
『이대로 가면…』이라는 상황은 매일같이 길거리에서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고,공장마다 노사분규로 문을 반쯤 닫고,5공 비리로 온 세상이 안개속에 묻혀 있을 때를 말한다.
오늘 우리나라 기업중에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밤새워 좋은 물건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팔 궁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기업인은 국세청의 눈치 안보기 위해 마지못해 간판을 달아 놓고 있다는 기막힌 얘기도 했다. 그야말로 「벌레」같은 기업인이지만 그를 동정하는 기업인들도 적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세상사람들은 땀흘려 일하는 보람을 별로 즐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의 양이나 질과는 상관없이 보수는 될수록 많이,노력은 될수록 적게 하는 것을 생활모럴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밑도 끝도 없이 복지,복지한다. 만말 들어도 즐거운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어디에 그런 축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구름에 떠서 살고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벌레의 몸부림을 하며 용트림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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