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위 계승자 결정 방식 국왕 지명 → 왕족 표결로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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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습 왕정 체제의 이슬람 국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왕위 계승자 결정 방식을 '국왕 지명식'에서 '왕족 대표 표결식'으로 바꿨다.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82)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20일 왕족으로 이뤄진 기구에서 표결해 계승자를 결정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국왕이 단독으로 동생이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는 그간의 전통을 바꿨다.

새 칙령에 따라 왕족으로 구성된 '충성기구'가 국왕의 후계자 지명에 참여하게 된다.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의 아들과 손 자들로 이뤄진 이 기구는 국왕이 최다 3명까지 지명하는 후보를 대상으로 비밀 투표해 후계자를 결정하게 된다.

국왕이 내놓은 후보 모두를 거부하고 자체 후보를 제안할 수도 있다. 충성기구가 뽑은 자체 후보를 국왕이 거부할 경우 이 기구는 1개월 뒤 국왕의 후보와 자체 후보를 놓고 재투표를 해 계승자를 최종 지명한다.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22일 이번 칙령이 "정치개혁이라기보다는 왕족 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계승 절차 손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압둘라 국왕과 왕세제인 술탄 빈 압둘 아지즈(79)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 국왕과 왕세제가 모두 고령이어서 후계 선출을 공식화.체계화하지 않을 경우 왕위 계승을 놓고 왕실 내에 심각한 갈등과 충돌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조치다.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의 아들로 인정된 왕자만 45명이기 때문이다. 또 1992년 현 국왕의 손자까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돼, 앞으로 왕위를 둘러싼 왕족 간의 갈등이 더욱 표면화할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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