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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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은 경기도경 공안분실장을 지내며 군사통치로 서슬이 퍼렇던 80년대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관절꺾기' '볼펜신문' 등 다양한 고문기술로 악명을 떨쳤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李씨는 정권 유지에 동원되던 경찰에는 '탁월한 신문관' 으로 여겨졌지만 민주인사들에겐 '지옥에서 온 장의사' '고문하는 백정' 으로 지목됐었다.

실제로 李씨는 재직기간 중 경찰로부터 청룡봉사상.옥조근정훈장을 비롯, 16차례의 표창을 받았고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대공수사에서 이근안이 없으면 안된다' 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고문이 있는 곳에는 그가 있었다. 심지어 '고문출장' 을 다니기도 했다.

李씨로부터 고문을 받은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90㎏의 거구로 컴컴한 조사실을 어슬렁거리며 손가락 두개로 팔을 슬쩍 잡아 누르면 금방이라도 기절할 정도로 아팠다" 고 토로한다.

연행자 앞에서는 사과를 한손으로 으깨는 악력(握力)을 선보이곤 했다.

85년 납북됐다 송환된 뒤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받았던 김성학(金聲鶴)씨 등이 86년 제기한 재정신청 사건 재판과정에서 공개한 李씨의 고문기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金씨는 재판부의 직접 신문에서 "85년 12월 경찰관들에게 영장도 없이 체포된 뒤 인천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고 처음 15일간은 아예 잠을 재우지 않았다" 고 폭로했다.

金씨는 또 "이근안이 '태워' 라고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나 곧 눈을 가리고 몸을 묶은 뒤 발끝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전해진 뒤에야 이것이 말로만 듣던 전기고문인 것을 알았다" 고 말했다.

물론 의도했던 진술이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주먹이 날아왔다.

金씨는 진술하다 말고 욕설까지 섞어가며 "그나마 죄책감이 든 경관이 '맞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진술하라' 고 한 말이 너무 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고 울분을 터뜨렸다.

대전 H중·서울 G고를 졸업한 李씨는 공군헌병 출신으로 인사기록카드에는 '취미 독서' '특기 합기도' 로 적혀 있다. (중앙일보 199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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