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가 앗아간 보금자리(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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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식은 내집마련후 올리더라도 혼인신고만은 26일 하자고 약속해놓고….』
18일오전 서울 미아동 새한병원 531호실.
간밤의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방에서 잠자다 4주의 상처를 입은 최재정씨(21ㆍ공원)는 넋이 빠진듯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수마가 야속하게도 최씨의 「전부」였던 임신 3개월의 아내 강혜숙씨(19)를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최씨가 강씨를 만난 것은 지난3월.
누이동생이 일하는 봉제공장에 찾아갔다가 동생의 소개로 사귀었다. 서로 어려운처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뜻을 합쳤고 양가의 승낙을 받아 4월부터 미아7동 산동네 재개발지역 보증금 1백만원짜리 최씨의 전세방에 보금자리를 꾸몄던 것.
따스한 정을 모르고 자란 최씨는 비록 가난한 단칸방의 신접살림이었지만 강씨와의 4개월이 별천지같았다. 반찬값을 아껴 동전이나마 돼지저금통에 넣는 강씨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느껴보기도 했다.
아내 강씨는 봉제공장 미싱사로 받는 월급 25만원을 꼬박꼬박 모았다. 최씨는 몸이 약한 아내가 산동네를 오르내리는 것이 안스러워 몇번이나 그만두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최씨의 40만원 월급으로는 힘드니 내집마련할때까지만 맞벌이를 하겠다고 고집했었다.
『전날밤에는 고향(전남 신안)에서 방학을 맞은 동생들을 서울구경 시켜준다며 한껏 마음이 들떠있더니….』
최씨는 6월부터 여러차례 방 벽에 물이 스며든다며 축대를 쌓아달라고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산꼭대기 계곡물들의 흐름을 막고있는 최씨의 방에 물이 스며드는 것은 당연했는 지도 모른다. 작년 장마때도 옆방의 벽이 무너진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살지도 않으면서 재개발딱지가 돈되기만을 기다리는 집주인에게는 「쇠귀에 경읽기」였다. 최씨가 작년 9월 세든후 집주인이 세번째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세입자는 집주인을 볼수가 없었다. 세입자문제는 복덕방이 도맡아 대행하는 것이 산동네 재개발지역의 관행이기도 했다.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렇게 착하던 아내를 빼앗아가다니….』
꿈을 잃은 최씨의 허망해하는 얼굴을 차마 마주하고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고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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