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총선」하나/이수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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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권의원들의 의원직 총사퇴결의로 때아닌 국회해산ㆍ총선거론이 관심을 끌고 있다.
평민ㆍ민주당 소장파의원 4명의 전격 사퇴서 제출로 불이 댕겨진 사퇴서 제출결의는 어느 일면 국회의사당에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처신만고 끝에 딴 의원배지를 한 두명도 아닌 79명이 동시에 버리고 다시 선거를 하자고 나섰겠느냐는 동정심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 뜯어보면 그들의 주장에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그들의 의지와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헌법에는 국회해산 조항이 없다. 87년 여야 개헌협상때 지금 여당으로 변신한 민자당의 민주계와 평민당지도부는 통일민주당으로 한솥밥을 먹으면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한사코 거부해 관철했다.
독재권력이 자의적으로 국회해산권을 악용할 수 있는 상황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집권을 장담하던 당시의 그들 주장과는 배치되어 어찌보면 일종의 패배주의적 발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상황변경론을 앞세워 스스로 부정했던 국회해산ㆍ총선거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또 89년초 4당구조하에서는 민정당이 국회해산→총선론을 유포했을 때 당시 야권은 헌법규정상 국회해산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던 기억이 새롭다.
설령 여야가 정치적으로 국회해산ㆍ총선거실시에 합의,총선거를 실시한다해도 법적으로는 13대 국회 임기(92년 5월) 절반도 안남은 잔여임기를 채우는 보궐선거에 지나지 않는다.
현행법상 의원이 총사퇴하더라도 다음 거는 「총선거」가 아닌 「총보궐선거」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개헌을 해서 묘수를 찾아야 하는데 국회해산ㆍ총선을 위해 개헌할 만큼 우리나라 사정이 한가롭지 않다. 때문에 지금 「총보궐선거」를 실시할 경우 앞으로 2년여에 총선거를 두번이나 치러야 한다.
그 천문학적인 총선거비용조달과 그에 따른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충격을 생각할 때 과연 실행가능할지 의문이다. 「구국적 결단」이라는 의원직 총사퇴가 정치적 투쟁에는 효용성이 크겠지만 법리적ㆍ현실적으로는 모순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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