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북유럽 복지모델 우리에겐 '덫'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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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북핵 문제로 난리인데 생뚱맞을지는 모르나 경제 얘기를 해야겠다. 바로 빈부격차와 복지 얘기다. 수년의 저성장 덕에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더불어 살아야 하고 소외계층을 도와야 한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이 자주 거론하는 게 유럽의 경제사회 모델이다.

거의 모든 유럽 국가가 소득이 고르고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유럽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니, 우리도 복지제도 등을 유럽식으로 꾸며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애써 외면하는 게 하나 있다. 겉보기에 '살기 좋은 유럽'의 배경에 자리잡은, 속으로 멍든 '부담스러운 유럽'이다. 과연 우리처럼 수준과 규모를 키워가기에 한시가 바쁜 나라가 '살기 좋은 유럽'을 지탱해 온 그 큰 경제적 부담을 질 수 있을까. 과연 우리처럼 나라 안팎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에 존망이 걸린 나라에 '평온한 유럽'을 유지해 온 그 경직적인 경제.사회제도가 맞을까. 이런 문제들을 거론하기 부담스러운 것이다.

유럽을 보라. 대부분 나라에 정부가 크다. 정부가 쓰는 돈도 엄청나지만 규제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나라 돈의 반을 정부가 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국민부담이 엄청나다. 심한 나라는 고소득자가 벌어들인 소득의 3분의 2를 정부가 챙겨간다. (OECD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느라 유럽의 높은 소득세를 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유럽모델이 좋다는 사람이 많은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유럽 나라들이 실업자에게 직장에 다닐 때의 70~80%에 해당하는 지원을 해 준다. 그 비용은 기업 몫이다. 근로자가 놀고 싶어하고 기업이 신규고용을 꺼리는 게 당연하다.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부담과 규제를 피해 해외로 빠져나가기까지 한다. 유럽 모델은 고(高) 복지가 고 부담- 큰 정부-고 국가부채-저(抵) 성장-고 실업-고 복지부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전형이다. 소득 2만 달러 고지를 넘지 못해 수년간 허덕여 온 우리가 과연 이런 나라를 원할까 싶다.

이렇게 얘기하면, 유럽 모델 좋아하는 사람들은 "북유럽은 높은 복지부담에도 불구하고 소득수준도 높고 안정 성장을 한다"며, "복지가 성장을 부추긴다"는 말까지 한다. 과연 그런가.

북유럽은 소득수준도 높고 성장도 한다. 그러나 복지에 돈을 많이 써서 소득수준이 높고 성장하는 게 아니다. 소득수준이 높아 그 많은 복지를 부담할 수 있을 뿐이다. 유럽의 소득수준이 높고 성장을 거듭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정부.기업.근로자 할 것 없이 나라 전체의 강한 경쟁력이 소득과 성장의 기반이다. 그리고 그 경쟁력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교육'에서 나온다. 남녀노소 모두가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경쟁력도, 소득도, 복지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야 어떻게 생각하든, 유럽인 스스로는 지금 식의 유럽이 더 이상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유럽 대륙 전체가 복지천국을 개혁하려는 산고를 치르고 있다. 심하게는 정권이 바뀌기까지 한다. 써버리는 복지(welfare)를 일하는 복지(workfare)로, 일하는 복지를 배움의 복지(edufare)로 바꾸고 있다. 규제를 풀어 경제를 다시 뛰게 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혈안이 돼 있다.

지금 우리더러 유럽 경제사회를 따르라는 얘기는, 유럽인들이 수십년에 걸친 실험과 악몽에서 이제 깨어나 벗어나려는 바로 그 함정에 빠지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정부와 민간 모두의 경쟁력이 유럽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규제와 부담이 적은 '작은 정부'를 두고 모든 이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교육'시키는 것이 복지의 핵심이어야 할 것이다.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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