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은 풀리지 않았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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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의 영등포역 상가분양사건과 87년 서울시 예산전용사건은 공식적으로는 일단락이 되었으나 국민의 의혹은 씻어주지 못했다. 사실이야 어떻든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영등포역 사건의 시발과 그 종결에 무언가 정치적 계산이 개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으며 서울시 예산전용과 관련된 강영훈국무총리의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국민의 의혹을 짙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두 사건에 대한 정부ㆍ여당의 처리태도다. 한국판 리크루트사건이라고까지 불렸던 영등포역 상가분양사건에 대해 검찰은 단 하루만에 수사를 끝내고 『임대차 계약과 관련된 국회의원은 더이상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계약자 명단은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밝히지 않겠다』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어 버렸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 예산 전용문제에 대해선 국회가 공전되도록 부인을 하다가 결국은 공개적으로 시인을 해놓고는 사과문안에 불만을 품고 강총리가 사의까지 표명하기도 했다.
국민으로서는 도무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를 가늠하기 어렵게 두 문제가 모두 불투명한 것이다. 영등포역 사건에 대해서 기왕에 수사에 착수했다면 좀더 시일을 두고 철저한 수사를 벌여 사건의 자초지종을 공개했어야 옳았다. 그래야 정부나 야당에 대한 의혹도 가신다.
또 서울시 예산 전용사건만 하더라도 아니면 아니고 그렇다면 그럴 일이지 국회에 나와 시인ㆍ사과까지 해놓고는 뒤에 와서 사실이 아닌 것을 여야합의 때문에 시인한 것이라며 사의를 표한다는 것은 결코 총리로서 격에 맞는 자세가 아니며 국민만 얼떨떨하게 만든 행위다.
많은 국민들이 두 사건에 대해 의혹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비상식적이고 불투명한 처리에 있다. 어느 나라에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정치에는 뒷거래가 있고 우리 정치에서도 그러한 흥정이 있었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여부가 너무도 명백하고 상식적으로도 판단할 수 있을 사건마저도 그러한 뒷거래와 흥정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면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재는 정부가 공직자사회의 기강확립을 위해 모처럼 강력한 사정활동을 펴고 있는 중이다. 이로 인해 사회의 경색이란 부작용도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번만큼은 과거와는 달리 윗물부터 맑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두 사건은 사실여부를 일단 접어두고 국민적인 의혹을 사는 사건이라도 정치라는 프리즘을 통과하기만하면 끝내 굴절되고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이는 결국 사정활동 전체에 대한 기대나 신뢰에 마저 금이 가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사회의 기강확립에 정치권이 예외일수는 없다. 오히려 정치가 가장 투명하고 맑아야 사회에 기강이 선다. 두 사건은 형식적으로는 마무리되었으나 국민의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국민의 의혹이 풀리지 않는 한 이들 사건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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